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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여름 Nov 28. 2023

10. 항상 좋을 수 없다는 진리

함께 자라는 순간들

매일 저녁 집에서 아이와 도란도란 그날의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보따리 속에 많은 이야기가 든 것은 아니지만 대충 어떤 하루를 보냈구나 하고 감이 온다.


그런데 유독 억울하고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다.

어느 하루, 아이는 교실 문 앞에서 들어오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인사를 잘 받아줘 놓고는 문 앞에서 길을 방해한다고 선생님께 말했고, 선생님이 뒤에 가서 서 있으라고 했다. 너무 억울했단다. 친구들이 좋아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또 어떤 날은 여자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 ‘도망쳐 ‘ 하며 무리를 지어 도망가기도 한단다.

또 태권도 학원에서는 다른 아이가 친구를 때리는 것을 말리다가 우리 아이만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다. 아이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아이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나에게 전이된다.

‘아니 우리 아이를 몰라? 왜 전후 사정을 안 물어보고 우리 애만 혼내는 거지? 우리 애가 만만한가?‘

당장 선생님께 연락하고 싶어 지지만 그랬다가는 진상 도치맘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걸 보니 도치맘은 맞는 것 같다.)


아이의 억울한 마음을 달래줄 방법은 우선 잘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수밖에 없다.

아이는 당시의 상황을 여러 번 재현해 가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다 혼낼만하니까 혼내겠지.’라는 말을 내가 했던가? 내 마음의 말이 당시 입 밖으로 나왔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선은 아이의 편에 서서 온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준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 아이의 마음도 한 번 헤아려 보다가 ‘여자아이들 중엔 그런 아이들이 가끔 있어. 어쨌든 그 친구는 인사가 싫은 모양이니 앞으론 안 하는 게 좋겠어.’라는 상당히 씁쓸한 결론을 맺는다.

그리고 선생님의 경우엔 태권도 사범님 앞에서는 눈물을 보였기에 사범님께서 아이와 긴 대화를 해주셨다. 사범님은 진짜 우리 아이는 장난을 친 것이 아닌 지 cctv를 돌려보고 확인 후 말씀해 주시기로 했단다. (결국 아이가 장난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결론이 없는 상태로 마음을 풀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아이가 사고 싶은 레고가 있었는데 마침 당근에 저렴히 올라왔길래 기분 풀기용으로 당근 거래를 했다.

레고 조립에 한창인 아이 옆에서 부품을 찾아주며 슬며시 말했다.


매일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단다.

오늘 이렇게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와.

그리고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날에는 또 언젠가 안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이제 좋은 날 오겠네’ 생각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또 안 좋은 날도 오겠다’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을 겪어가며 어른이 되는 거야.


아이가 속상할 때마다 해주던 얘기라 본인이 직접 대답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아이의 대변인이 돼주어 밖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들을 대신 막아주고 풀어주었고, 또 아이는 부모를 방패로 삼아 마음을 쉽게 털어냈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밖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들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되는 상황들이 생기고, 그걸 보는 엄마의 마음은 안스럽기만 하다.

지금보다 더 많이 다쳐야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더 마음이 아픈걸까.

마음이 아프지 않고 어른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어릴 때 마음이 다쳤을 때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을 다 해본다.


하지만 어둠이 있어야 빛이 밝다는 것을, ‘희로애락‘을 깊이 겪어본 사람이 더욱 짙은 농도의,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도 스펙터클한 역사가 담겨 있음을 시로 표현했다.


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아이가 가는 길에 놓일 태풍과 천둥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그 천둥이었던 적도 있었을 거다.)

내가 그것들을 맞고 이렇게 살아내듯, 아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겪어내며 영글어 갈 것이다.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이고 진리다. 좋지 않은 순간들은 우리가 살면서 놓친 것이 없는지 뒤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좋기를 기대한다. 좋기를 기대하는 ‘희망‘은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이 스펙터클하고도 지루한 반복이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나이테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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