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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여름 Oct 14. 2023

9. 이런 선물을 주셨군요

함께 자라는 순간들


친구들의 얄궂은 장난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응을 해줘야 마음이 편한, 속이 따뜻한 아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눈물이 나지만, 또 자신이 잘못한 것은 반드시 사과하는 용기 있는 아이.

엄마의 잔소리를 무서워 하지만,

엄마가 힘들어하면 손을 내미는 아이.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쉽게 재미를 느끼는 아이.

그런 아이를 제게 선물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아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이 물질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사실 아이는 정말 선물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어떠한 목표(대부분 똑같은)를 향해 달려가고 그 과정에서 경쟁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우리 학부모들은, 아이의 학습 진도가 뒤쳐지지 않는지 혹은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못한 부분이 없는지 체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A: 요즘 준우는 뭐해요? 우리 애는 피아노랑 태권도만 다니고 있어요. 수학은 집에서 문제집 2장씩 풀고요.

B: 아, 우리 애는 영어, 태권도만 다녀요. 남자애라 운동을 더 시켜야 할 것 같은데 뭘 할지 고민이에요.

C: 축구 아니면 수영 한번 보내봐요. 남자애들은 거의 둘 중 하나는 꼭 하더라구요.


이런 식의 간단한 정보성 대화는, 학부모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대화 패턴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대화는 크게 문제도 없다.

하지만 이를 아이에게 ‘적용’시킬 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준우‘라는 남자아이가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아이라면? 준우의 엄마는 남자아이는 스포츠를 잘하고 활동적이고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

준우는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른 채(사실, 어린아이들은 억누르고 있다는 감정 자체도 뭔지 모른다.), 엄마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본성이라는 것은 감출 수가 없어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 새어 나오기도 하고 화산 터지듯 갑자기 분출해 버리기도 한다.

아이의 본성과 엄마의 양육 스타일이 다르면 갈등이 피어나기 마련이다.


나 또한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했다.

ebs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는데, 동양인들은 남들보다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열심히 해서 평균을 맞추려고 하고 서양인들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고 한다. 나 또한 동양인이다 보니, 아이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평균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만 했으면 다행이지, 그에 대한 압박과 잔소리를 남편과 아이에게 전가한 것은 물론이다.


사실 준우 엄마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가 운동을 좀 더 잘하고 좀 더 남자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는 밤에 나가 같이 뛰기로 했다. 나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다 보니 힘들어서 ‘아고 힘들어 ‘ 소리가 나왔다.

그랬더니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엄마, 손 잡고 같이 뛰어요. 반바퀴만 더 뛰고 5초 동안 쉬었다가 다시 뛰어요. 엄마 원래 잘하니까 할 수 있어요.’ 라며 나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래,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였지.


아이의 이런 감성적인 본성은 자주 튀어나왔지만 나는 아이가 좀 더 남자답고 강해지길 기대하며, 이를 애써 외면하고 눌렀다.

아이의 장점을 장점으로 보지 못하고, 보완해야 할 단점으로 본 것이다.




사실 아이의 본성은 장점, 단점이라는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구분할 의미조차 없는 것들이다.

글의 첫 부분에 나오는 문장은 내 아이를 관찰하고 느낀 점을 쓴, 내가 생각하는 우리 아이의 본성이다.

장점도 단점도 아닌, 그냥 내 아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냥 오래 생각하고 아이에 대해 써내려 가다 보면 사랑이 피어오른다.

아이의 존재에 감사하고, 이 모든 것이 선물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내가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들과 다른 이 선물을, 다른 선물들과 똑같이 포장하느냐 아니면 선물에 맞게 특별하게 포장하느냐 고민해 본다.


조지은 교수가 쓴 <공부 감각, 10세 이전에 완성된다>라는 책을 보면, 아이들에게는 다 다르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함께 할 일은 아이의 흥미와 적성이 무엇인지 탐험하고 그 아이가 원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면서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아이의 타고난 성향이 어떤지(본성) 관찰하고 그것과 어울리는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요즘 그런 것들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내 아이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쉽게 시도하는 것도 있다.


아이를 평균에 맞추는 과오를 범하고 싶지 않다.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그리고 멋지게 살아내는 방법을 전하고 싶다. 자신의 매일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인형에게도 음료를 나눠주는 섬세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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