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챗 앱 스토어에 출몰하다
∙ 이 매거진은 IT 스타트업 굿너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 이 매거진은 연재물입니다. #1화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루에 두 개의 질문이 배달되면 이에 대해 글로 답한다. 질문은 "당신의 첫 여행지는 어디였나요?", "당신의 하루는 어떤 사람들로 채워져 있나요?"와 같이 취향, 취미, 관심사, 일상에 관한 것들이다. 이런 질문에 쭈욱 답변을 하다 보면 성별, 나이, 외모를 몰라도 그 사람이 누군지 정의된다. 이렇게 글로서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이 모여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앱이다. (댓글도 나누고, 채팅도 나누고...)
아직 다 만든 게 아니라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좀 그렇지만, 현시점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지표만 놓고 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가만히 두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서버비 이상은 벌어다 주지만 회사를 굴러가게 할 정도는 못 된다. 가치 제안 측면에서도 '정확히 어떤 가치를 제공한다.' 혹은 '어떤 특장점이 있다.'고 말하기 애매모호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맨 처음 이 앱을 만들 때 '주 고객은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기획자로서 레벨이 부족했다.) 그저 질문에 답하는 게 즐거워 보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으니 그 경험을 그대로 앱에 옮기면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끝이라 생각하면 부족하지만 시작이라 생각하면 꽤 괜찮은 출발이다. 마치 RPG 게임의 첫 번째 캐릭터와 같이 말이다. 사실 앱 개발 경험이 거의 없는(?) 팀이 만든 것 치고는 성과가 나쁘지 않다. 안드로이드에서만 광고비 없이 5만 다운로드 이상을 찍었고 잘 나갈 땐 급상승 차트 1위를 한 적도 있다. (무려 인스타그램을 꺾었다!) 매출도 소셜 부문에서 100위권은 된다. (우린 이걸로 다른 앱의 매출을 가늠한다.) 하지만 숫자가 다는 아니다.
(다시 게임 비유로 돌아가) 우린 게임의 룰을 파악하지 못했고 효율적인 육성법도 몰랐다. 상황에 맞춰 능력치를 찍고 스킬을 올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잡다구리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첫 번째 캐릭터는 항상 깨달음을 준다. 마침 카테고리가 앱 서비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SNS였고 UX 디자인, 개발, 유저와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굉장히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주챗을 내놓고 겪은 일들]
중앙 상단에 있는 로고를 누르면 메뉴가 나오는데 이걸 아무도 몰라서 '메뉴가 없다'는 문의 폭주.
베타로 내놓은 지 일주일 차 밤~새벽 사이 300명이 가입을 했는데 서버가 내려감. 그래서 대부분 탈주.
새로운 아이디를 계속 만들며 악성 광고를 하는 유저와 몇 주간 사투를 벌임.
분쟁에 대한 기준 및 대처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유저 간 분쟁에 휘말림.
영문도 모른 채 가입자 수와 결제가 2~3배씩 뛰기도 하고 영문도 모른 채 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함.
'경험이라 쓰고 막장이라 읽는' 일들을 겪고 나서야 상용 앱의 기본 수준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앱을 내놓기 전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부딪치며 배운 셈이다. 흔히 개발자들 사이에 쓰이는 기술 부채(Technical debt - 눈앞에 있는 문제 해결에만 급급해 대충 개발을 하면 나중에 구조적인 문제로 큰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라는 말이 있지만, 기획 부채와 디자인 부채도 (고통의 수준이) 이에 못지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개발을 하고, 매뉴얼을 기반으로 서비스 운영을 하며,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개발 방향을 결정한다.
우주챗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과정은 많은 공부가 됐다. 역설적이지만 별 고민 안 하고 만든 앱 덕분에 우리가 누군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됐고 그 지점에서 우리만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아직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주챗을 출발로 정의했으니 계속해서 앱을 만들 생각이다. 이번엔 좀 더 가벼운 앱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별 내용 없는 걸 만들겠다는 건 아니고, 유저 입장에서 진입 장벽이 낮고 즐기기 쉬운 걸 선보이고 싶다. 그러면서도 가치 제안이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수익 모델이 딱 떨어진다.) 한 가지 가치에 집중한 아주 명쾌한 앱을 들고 올 것이다.
부디 그전까지 버틸 수 있기를 바라며...
글쓴이는 현재 스타트업 GOODNERDS에서 앱 서비스 기획과 브랜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GOODNERDS는 질문에 답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익명 SNS 우주챗을 개발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주챗은 플레이 스토어와 앱 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