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의 추이(推移)를 지켜보며
진영 논리의 극심한 勢 대결
조국 법무부장관은 취임사에서 “학자와 지식인으로서 평생 소망해왔고, 또 민정수석으로 성심을 다해 추진해왔던 시대의 소명 검찰개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일갈했다. 또 가까스로 마련된 인사청문회를 거친 그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드러난 의혹만으로 적임자를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라고 말하며 임명을 감행했다. 임명장에는 ‘법무부 장관 조국’이라고 인쇄된 글자가 선연했다. 그러나 방송과 언론과 인터넷은 폭풍이 휘몰아치듯 조국 관련 기사를 토해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사방팔방 확산되던 조국 사태는 국론분열의 양상으로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급기야 피켓을 든 국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 이후 가장 많은 촛불집회 인파 기록을 갈아치웠다. “조국의 검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파렴치한 언론과 방송”이라고 서초동 집회에서 외치는 바로 옆 광화문 광장에선 “조국 퇴진과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촛불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취임하고 그렇게 35일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조국 장관이 오늘 오후 2시경에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필자는 조국 사태의 추이를 여태껏 지켜보며 여러 가지 소회를 느꼈다. 먼저 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그를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고 성경은 말하는데 그가 남에게 겨누었던 날카로운 칼끝은 어느 순간 서슬 퍼런 칼이 되어 자신의 흉중과 폐부 깊은 곳을 찔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듯 전하는 언론과 방송은 조국의 과거 발언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마치 그 장면의 해설서처럼 읽히게 했다. 남에게 엄격했던 그의 잣대는 자신을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필자는 촛불과 그 정신의 바탕위에 집권하게 된 영광을 설파하며 그렇게 자랑하던 이 정권의 사람들에게서 가식과 위선을 발견하곤 했다. 특히 광화문 집회 현장의 사람들을 관제 데모에 동원된 사람들처럼 깔아뭉개는 것을 보며 ‘아, 이 정권도 드디어 심각한 시각장애를 겪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는 소리를 들었다. 둑에서 바늘구멍만한 조그만 물새는 틈을 애써 외면해 ‘심각한 누수현상을 겪게 되는 첫발’을 내딛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또 한 가지는 흔히 사회주의자가 그렇듯이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를 전망하던 방송의 해설자 한 사람은 처음에 혹여 조국 가족의 극단적인 선택을 염려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되겠다며 조국과 그 가족의 기대이상의 선방(?)과 내로남불에 혀를 내둘렀다. 절대선(絕對善)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자신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한때 학생운동을 했다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줄 모르고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서 컴퓨터의 증거보존을 위해서 PC를 감추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전직 장관까지 지낸 사람의 인식이 아직도 군사정권의 시대를 살고 있는 발언을 하는 자가당착이라니... 지금 이 정권이 집권 여당이고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새로 물갈이하고 임명한 검찰이지 않은가. 이 정권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가 없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기 진영의 사람들만 챙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다.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만 나라의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기도할 뿐이다. 이 글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