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국가로 건국된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헌법정신에 기독교의 사상이 두루 입혀져 있는 미국은 세계의 패권 국가이며 경찰국가의 노릇을 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미국과의 외교, 군사적 관계 여하에 따라 그 나라의 국운을 결정할 만큼 미국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미국과 일본의 외교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을 한국을 지배하기로 밀약’한대로 국운이 결정됐다.
그런 한편에 6.25전쟁 때는 미군의 파병과 함께 UN군의 든든한 지원이 이 나라를 지켜냈다. 미국에서 기독교 TV방송이 한창 상종가를 올리고 왕성하게 뻗어갈 때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곧 머지않아 미국의 기독교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에도 수십 년 전 기독교방송들이 우후죽순 설립되고 왕성해갈 때 그 방송매체들의 발전으로 인해 신자들은 교회가 부흥될 줄 알았다. 그러나 교회사를 연구하던 학자들의 판단대로 우리나라도 기독교 인구가 어느 순간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무릇 종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신앙생활은 경제적으로 부요해지고, 지식이 증가하는 시점부터 하향세를 기록하곤 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자신의 주먹을 믿고 자신의 힘이 대단하다고 믿기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형극(荆棘)의 길을 걷게 되면 백방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 하늘을 쳐다보고 전능자를 의지하게 된다.
일제 때도 물론이거니와 전후세대들은 신앙의 힘으로 인생의 고단한 나그네 길 순례의 여정에서 영육간의 위로를 받았다.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고, 옷가지도 변변치 못할 때 그래도 부모들은 예배당에 가서 무릎 꿇고 나라의 태평성대와 부흥발전을 기도하고 자식들의 무한한 안녕을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었다.
그 부모세대의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으로 자식들은 대학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사회적으로는 산업의 역군이 돼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이렇게 부모들의 기도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경제적인 부요, 평균이상의 학벌, 정년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에서 안락하게 살던 국민들도 이제 의식주문제만 아니라 정말 나라의 안녕을 빌어야 할 때다.
이상한 무리들이 불현 듯 재등장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절 대학에서 중국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사상을 열렬히 추종하는 무리들이 등장했다. 음지에서 비밀리에 점조직으로 활동하던 이 무리들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고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 중에서 전향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머지 상당수의 사람들은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의 미궁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도 끝나고, 문민정부를 거쳐 이제 외교·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당당히 세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점인데도 안타까운 것이 있다. 필자는 이 점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다. 바로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이다. 진보의 주장 상당수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제헌국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자유'를 삭제했다. 그리고 이 정부 들어서서 시행하는 정책들의 대부분들이 시장에 순기능하는 정책들이 아니라 역기능하는 정책들을 남발함으로써 사회가 어지럽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거짓말이 드러났음에도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의 민낯이다.
자기편만 드는 진영논리에 빠져서 헌법과 국민들의 뜻을 존중하지 못하는 정부는 항상 조기 레임덕에 빠져 허덕여왔다. 임기중반을 치닫는 이 정부는 잘못된 정책들을 과감히 개선하고, 인재풀을 넓히는 탕평책을 씀과 아울러 반대 진영의 국민들의 목소리도 경청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듯이 대통령은 취임사에 손을 얹고 초심을 다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