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젖을 떼고 유아기를 지날 무렵 아이들은 장난감과 놀이터의 효용성을 알게 된다. 장난감도 싫증나고 비가 와서 놀이터 가기도 귀찮을 때 아이는 엄마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졸라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한글을 깨치고 나면 한 장씩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재미에 빠져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든다. 픽션이 들어간 책의 내용과 냉엄한 현실의 전개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 아이는 한 단계 더 깊은 성숙한 시선으로 인생을 보게 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을 붙들고 사춘기 내내 인생에 대해 탐구하기도 하고, 신춘문예에 응모할까를 생각하며 새해를 맞고, 책 속의 문장을 읽어가는 속도로 터벅터벅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게 된다.
‘도매도 잘하며 소매도 잘하는’이란 제목으로 전에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도매도 잘하고 소매도 잘한다는 것은 지식의 총량이 상당하다는 방증이고, 그에 못지않게 재빠른 센스가 있어서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해서 남이 못하는 것을 수월하게 해내는 은사를 일컫는다. 도매도 잘하고 소매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에 능수능란한 사람이 남의 일에도 유익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 하나 손쉽게 처리하지 못해 경사진 언덕 넘어가지 못하는 고장난 차량처럼 삐걱대다가는 남에게 늘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한두 번은 아쉬운 소리를 들어주지만 각박한 세월에 누가 매번 자신의 처량한 신세한탄에 귀기울여주겠는가.
굿뉴스울산의 편집장으로서 몇 년간 취재현장을 지켜낼 때 그 현장의 사진과 영상은 신문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졌다. 그리고 그 현장의 느낌을 살린 글을 썼을 때 그 글은 나의 소중한 삶의 편린이 됐고, 하나씩 쌓여진 그 기록물은 내 삶의 일기장이 됐다. 내가 편집장의 일을 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가 하는 것이다. 당장의 눈앞의 것에 정신이 팔려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현실직시야 당연하지만 미래비전이 없는 사람이 어찌 푸르고 드넓은 창공을 일취월장 비상할 수 있으랴. 참새처럼 바쁘게 돌아다녀야 모이를 목에 넘기고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더 멀리 보아야 하고, 독수리의 날개를 장착하고 더 높이 활공할 수 있어야한다.
한해가 이우는 세밑에 아무쪼록 다윗에게 요나단 왕자 같고, 사도바울에게 바나바 같았던 좋은 인연을 만나는 새해를 그려본다. 고단했던 한해의 시간들이여, 잘 가거라.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