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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관 편집장 Dec 22. 2020

하루치 양식을 위한 기도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 유대인들의 삶은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다름없었다. 윗돌 빼 아랫돌 괴듯 답답한 생활환경에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아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자존심의 세기는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신의 계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세계 모든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모세는 신의 계시로 십계명을 받았고, 모세오경을 기록했다. 모세오경에는 유대인들이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모든 민족 가운데 뛰어나게 하겠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사람들 가운데 존경과 명예만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도 허락하리라”는 약속이 기록돼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극렬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땅에 이방인들이 통치하는 것을 용납지 못하고 봉기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럴 때 나사렛 예수의 기적적인 능력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일부 무리들은 그의 제자가 돼 봉기를 주도하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정작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천명(闡明)하신 구세주는 일절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는 하늘나라에 관한 메시지만 전할 뿐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기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실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들은 구세주가 고난 받는 험악한 장면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군중심리와 선동에 휩싸였다. 예수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로마황제를 물리치거나 대항하라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화급하고 당장 필요한 개혁인데도 불구하고 중차대한 이런 일에 대한 언급은 않고, “공중에 나는 새한마리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데 하나님 앞에 존귀한 너희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것을 먹을까 저것을 입을까 걱정하는가?” 말하며 도리어 군중들을 나무랬다. 먼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의식주 문제 같은 일상적인 것은 하늘에서 공급해주는 힘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날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했다. 언뜻 이 말은 아주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적잖은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항상 계획과 대비책이 있어야 안심하기 때문이다. 현재 부동산 문제가 핫 이슈다. 소시민들은 집 한 채 소유의 꿈을 품고 일생을 살아간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치의 양식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한다면 “그처럼 시시한 기도를 왜하냐?”며 도리어 반문할 것이다. 또 연봉 높은 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안정된 직장에 입사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에게 너무 높은 데 바라보지 말고 오늘 필요한 하루치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면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점령한 올 한해 하루 벌어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가 됐다. 여느 때 같은 일상적인 나날의 전개였다면 연말결산에 분주하고 송년회다 동창회다 각종 모임에 다니느라 분주할 테지만 올해는 당장 오늘 하루의 생존이 급선무가 됐다. 해외여행은 꿈같은 이야기가 됐고,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경사는 물론 장례식에도 인원통제에 따라 고인에게 인사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학교가고 회사 출근하는 기본적인 일상이 난망(難望)한 일이 됐다. 필자 또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애꿎은 피해를 겪고 있다. 그러나 세밑에 누구에게 원망하기에 앞서 한 해 동안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며 잠잠히 기도할 시간이 됐음을 깨닫는다. “주여, 오늘도 일용할 양식으로 채워주소서” 은혜롭고 감사한 하루가 쌓이고 쌓여 일생이 됨을 깨닫는 코로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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