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인터넷 활용법

능수능란한 인터넷 전문가는 디지로그 시대의 프론티어

by 박정관 편집장

캐달락을 눈앞에 던져준다고 해도 운전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는 눈요기 거리가 아니라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고 시동을 걸어
엔진의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어야 진정한 드라이버가 된다.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잘 활용해야 내게 맞는 옷이 되고 악기가 된다.

Diglog(디지로그)는 이어령 교수가 제안한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다. 디지로그의 시대는 이세돌과 커제를 격파한 알파고의 혁명처럼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로봇의 시대를 맞게 됐다. 흔한 예로 고속도로 통행료 납부는 이미 하이패스가 사람이 돈을 받아 계산하는 것보다 엄청 빠른 속도로 전산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도 시범 운행 중이고, 외국처럼 머잖아 드론택시도 보편화 될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글·사진·동영상 같은 콘텐츠의 구성요소로 잘 활용하면 파워블로거처럼 힘을 지닐 수 있다. 블로그의 글로 전자책을 발간할 수도, 인쇄물로 된 책을 발간할 수도 있다. 콘텐츠를 통해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네이버의 밴드 같은 경우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초등학생 동문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고 라틴어로 성경을 설교하던 시대에 인쇄술의 혁명을 타고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루터의 말은 ‘서적’이라는 도구를 통해 유럽의 사람들의 가슴에 경건하고 종교적인 욕망에 새로운 불을 붙였다. 루터에게 쿠텐베르그의 인쇄술이 오늘날 우리 눈앞의 인터넷 신기술의 도래가 아닌가.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 회장은 이화여대 앞에서 500만원으로 작은 옷가게를 시작해 재계 40위 안에 드는 그룹을 일구었다. 울산 중구 성남동의 주리원백화점은 당시에는 첨단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타고 어느덧 이랜드 계열사의 뉴코아 아울렛으로 개명한지 오래됐다. 뉴코아가 무슨 뜻인가. core는 핵심이다. 그러니 newcore는 새로운 핵심이다. 이름에 멋진 의미를 담았다. 우리가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뉴코아가 될 수 있기에 잠시 인용해보았다.

온맘닷컴 홈페이지 세미나를 울산에서 열었을 때 블로그를 잘 활용하라는 제안을 받고 블로그를 운용중이다. 나는 울산시청의 블로그기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그때 카카오톡 팀장이 교육을 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그 당시 기자들의 글 솜씨나 사진 찍는 실력들은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울산의 대형교회 목회자의 주보에 실리는 글을 읽곤 한다. 어떤 글을 꾸준히 읽으면 그 사람에게 동화된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영화의 감동을 감독의 심정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손주와 카카오톡을 통해 5분짜리 동영상을 주고받는 시대가 됐다. 지역을, 시간을, 공간을 넘어서는 멋진 사이버 세계가 우리를 맞아줄 채비를 끝내고 있다.

사이버상에 교회 건축을 할 때 유익한 점은 이렇다.
첫째 건축비가 필요 없다. 둘째 아무 때나 방문 가능하다. 셋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넷째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단들이 더 활개치고 놀이터 삼고 있음을 안타깝게 주시만 할 것이 아니라 선점해 나가야한다.

북한의 사이버사령부가 남한의 인터넷에서 얼마나 분탕질을 치고 있을까. 그것을 누가 밝혀주고 있는가. 댓글로 전직 국방부장관이나 체포하는 한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촛불을 들었다고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을 탄핵해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으니 북한 김정은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소로울까. 공권력을 우습게 여기는 대한민국은 결국 그런 권위의 무시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공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아예 싹을 자르고 엄벌에 처한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어느 교회의 목회자가 설교를 카피했다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 설교준비에 쏟으라고 일주일에 한번씩 ‘기도원의 하루’를 선물했다면 어땠을까. 지친 목회현장에서 힐링하며 성경 속 시공간을 드나들며 묵상을 통해 준비된 설교로 다시 목양을 잘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설교는 듣는 것이지 판단하는 것이 되면 교회는 분란에 휩싸이게 된다.

성도들의 지식증가와 인터넷의 발달이 수사관이 돼 그 목회자가 임지를 옮겼다면 그곳에서 어떻게 또 목회를 이어가겠는가. 굿뉴스울산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장혜리 집사는 에바다농아교회에 찬양집회를 다녀갔으며, 일면식도 없었지만 블로그의 친구가 된 저자의 글을 이번 신문에 게재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좋은 정보도 오가지만 음란한 업자들의 놀이터가 돼가고 있으니 단속이 필요할 정도에 이르렀다.

종이신문을 통한 정보를 구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미국은 종이신문을 통해 정보를 구하고 신뢰한다. 한국은 발행부수도 없는 신문이 인터넷에 기사를 올릴 수가 있고, 어뷰징 수도 늘릴 수 있다. 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한 종이신문을 통한 공정한 정보로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빼고 모두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집단들은 화합하지 못하는 그 힘 때문에 자멸하게 된다.

참새처럼 부지런히 이곳저곳 다니며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을 금해야한다. 정 자신에게 맞는 것이면 좋은 선택이 되며, 삶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신학생이기에 명심해야 할 것은 seminery라는 신학함을 정의한 단어는 이미 세미나를 받았다는 어원(語原)을 잘 새길 일이다. 독수리처럼 천리안을 가지고 활공해야 부지런한 참새를 이긴다. 독수리의 날개를 지니고 참새처럼 바지런하면 촐싹댄다고 욕먹는다.

조용기 목사가 잦은 해외 집회를 다닐 때 성도들이 담임목사를 잘 볼 수 없다고 불만이 많았다. 그때 고견을 듣고 조용기 목사는 그대로 실천했다. 현지에서 생생하게 복음전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주일예배시간에 영상을 보여줬더니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해외선교도 탁월하게 한다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게 됐다.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누리지 못하지만 그 영상을 통해 일심동체가 돼 자부심이 강화됐던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배당할 것인지 내가 지배할 것인지는 그 활용법에 달려 있다. 캐달락을 눈앞에 던져준다고 해도 운전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차는 눈요기 거리가 아니라 차문을 열고 앉아 두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고 시동을 걸어 엔진의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어야 진정한 드라이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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