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날개를 달아주는 시간(굿뉴스울산 27호 편집후기)
굿뉴스울산은 2주 한 번 발행되는 특수격주간 신문이다. 그러나 등록한 만큼 발행하지 못했다. 그간 월간지처럼 발행돼 왔는데 이번에는 터울이 길어져 마치 계간지처럼 돼 버렸다. 그나마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카페 4器와 daum과 naver 두 개의 블로그를 통해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보도 자료를 생산해냈다는 것이다. 이제 내일 밤이면 윤전기에 들어간 신문용지가 또 한 번의 굿뉴스울산으로 배태(胚胎)돼 나온다.
12면 지면 중에 오늘 오후 두 면을 마무리하면 되고, 김 실장의 손을 거쳐 편집돼 나오는바 몇 차례 교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최종 pdf 파일을 인쇄소에 넘기면 헐레벌떡 은행으로 달려가 인쇄비와 편집비를 송금하면 그제야 한 숨 돌리며 밤하늘별을 보고 위안을 얻고, 차고 시원한 바람을 얼굴에 받아들인다. 여태 그렇게 해왔다. 오늘은 미리 인쇄비와 편집비를 부치고 조금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렌지에 돌리고 찬 하나와 물 한 컵으로 점심을 대충 먹는다. 강아지들이 외출 안하고 자기들과 같이 있는지 관심 갖고 살피는데 오늘은 외출하지 않을 태세인 줄 알고 점심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창으로 들어오는 볕을 즐기며 졸고 있다. 강아지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다가 한참만에야 소파에 드러누워 세금도 없는, 차별도 없는,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가을햇살을 마음껏 즐겼다.
봄부터 시작해 늦가을에 운행을 마치는 장생포 고래바다여행선을 몇 차례 탔지만 아직 고래떼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년 봄에 또 한 번 도전해 다음에는 돌고래 떼를 보고 사진을 찍고, 영상도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겠다. 지난번 고래바다여행선을 탔을 때 생각지도 않던 멀미가 나서 3시간 운행하는 동안 고생을 했다. 그나마 몸을 좀 추스르고 3층 갑판에 올랐을 때 여행선을 따라오는 갈매기들의 비상을 보았다.
육지와는 제법 먼 거리를 새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이 가고 싶은 대로 날아다녔다. 그때 문득 ‘두 날개를 장착한 새는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새들의 비상은 손연재의 체조할 때 몸짓처럼 자유로왔다. 발레리나의 우아한 비상처럼 품격 있었고, 탐험에 나선 인디애나 존스처럼 두려움을 몰랐다. 두 날개를 장착한 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 지면에는 남구청 한마음대학 문화강좌에서 혼신의 감동으로 열창을 뿜어낸 테너 김승일의 노래하는 장면을 실었다. 그 기사를 작성하다가 희한한 문구가 떠올랐다. ‘김승일은 분명 사람이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만은 그의 재능은 천사나 다름없다. 그때 출연했던 <스타킹>이라는 그 프로가 그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의 날개를 달고 전국을 다녔고, 세계를 무대 삼았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게 창작한 멋진 구절이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을 했다. ‘전능자의 손수건만이 인생들의 눈물과 땀을 닦을 수 있다!’는 이 구절도 생각지도 않았는데 뇌리를 스쳤다. 굿뉴스울산 발행인 이금희 목사의 출판기념회를 치르고 난 후 초청 간증집회가 열려지길 간절히 기획했고, 간절히 사모했다. 집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간증을 들려주고 현장에서 책을 판매해 수익금이 발생하길 기대했다.
그 수익금을 신문제작에 보태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열린 문은 닫혀 있다. 대신 요양병원에서 몇 차례 설교하고 주일마다 언약의 교회에서 영상설교를 만들어 인터넷에 걸어두었다. 언약의 교회에서 새로 8000장 전도지를 만들어 배부하다 절반 4000장이 아직 남아 있다. 그 동안 굿뉴스울산을 창간하고 교회 이름을 의도적으로 숨겼는바 신문이 어느 정도 알려지자 교회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그래서 우리는 개척교회를 통해 열려진굿뉴스울산 창간일지를 간증하는 시간이 활짝 열리길 희구하고 있다. 천사의 날개가 달려지는 시간이 도래한다면 두 날개를 장착해 두려워하지 않는 새처럼 비상하고 싶다. 이전에는 유명해지길 바라지 않았는데 이제 유명해지길 바란다. 존귀와 영광을 입는다면 그것을 도구삼아 더 크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