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으며

예수그리스도,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완벽한 실천과 기여

by 박정관 편집장

또 한 번의 새해가 저물어간다. 낡아지는 옷처럼, 소멸하는 촛불처럼 한해가 끝나간다. 그제가 성탄절이었고, 연말연시를 맞으며 종교칼럼의 형식으로 글제를 골라본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울산지역 곳곳의 내밀한 속내를 내 나름의 따스한 시선과 포근한 감성으로 감싸고자 글을 써왔다. 한편 지역신문의 특성을 고려하여 되도록 종교적인 심오한 교리와 철학을 저어하여 피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탄절을 빌어 종교적인 글제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작금 북핵의 군사위기와 이전투구의 혼란한 정치상황과 암울한 경제전망과 헬조선에 부정적 언어가 난무하며 모두 네 탓으로 돌리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이때 거울삼아 우리를 살피며 귀감으로 삼고자 함이다. 2천 년 전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유대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정이 일제 식민 지배를 받던 한민족과 비슷한 배경이었고, 유대교의 계보를 이어 태동한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되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 것에서 앞으로 우리가 취사선택(取捨選擇)할 수 있는 귀중한 가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 사량(思量)한다.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한 유대인의 역사는 출애굽의 모세를 정점으로 하여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간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 이집트를 탈출한 민족적 영웅으로 십계를 받았고, 모세오경을 저술함으로서 유대인의 헌법의 기초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예언자들의 예언서와 다윗의 70편에 이르는 주옥같은 시를 비롯한 시편과 솔로몬의 잠언과 전도서, 유대인의 역사의 기록인 열왕기와 역대기 등의 구약성경 39권이 유대교의 경전(經典)으로 집대성 되었다. 유대민족의 독특한 이력은 이대별(二大別)로 나뉜다. 그들을 선민으로 선택했던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들이 그 명령에 순종했을 때 유대민족은 일취월장 부흥성장 할 수 있었다. 삼손이나 기드온이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엘리야·엘리사·다니엘·느헤미야·에스라 같은 걸출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민족적 위기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구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우상숭배하거나 종교적 타성에 젖어 흥청망청 세속에 빠져 타락할 때 어김없이 고난과 파멸을 맞게 되었다. 한 마디로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열쇠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순종보다 불순종한 세월이 길었다. 예언자들이 아무리 바른 소리를 외쳐도 외면했다. 우하라 하면 좌하고 좌하라 하면 우했다. 거짓 예언자들이 감언이설을 쏟아놓으면 ‘얼씨구나 좋다’하며 그대로 따라했다. 탁월한 인물과 백전백승의 전략이 있어도 흥하는 데는 오랜 시간의 기도와 정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는 데는 어리석은 왕과 간사한 신하들 몇으로도 충분했다. 그럴 때는 충신들이 아무리 목숨 걸고 충언해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유대인들이 로마의 식민 지배로 군사적 제재와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억압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 지는 것처럼 힘든 세월을 살아갈 때 나사렛 예수가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태어났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나사렛 예수. 그는 3가지 ing 사역에 중점을 두었다. 설교(preaching)와 가르침(teaching)과 치유(healing)가 그것이다. 먼저 하나님나라에 대한 선언으로,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천국이었다. 천국을 닮아가는 이 땅이 되도록 선포한 것이다. 또 나사렛 예수는 이 땅의 바른 가치관과 윤리를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그는 치유를 행했다. 치유이론을 설파하고 의학에 대해 강론한 것이 아니라 직접 치유의 기적을 드러냈다. 문둥병자나 혈루병 걸린 여인과의 접촉과 죽은 청년의 관에 손을 대는 행동 모두는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통해 기적을 이루었다. 그는 율법의 주인일 뿐 아니라 율법을 복음으로 승화시킨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이런 완벽한 사례로 증명했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하나님의 현현(顯現)이었던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이 사랑이었다. 그는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야고보 요한 형제와 12명으로 제자를 꾸려 그들을 3년간 소수정예로 길러냈다. 그 12명의 제자들은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했다. 사도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친모였던 마리아를 돌보는 임무가 부여됐기에 장수했고, 마리아 사후 페트모스 섬에 유배돼 갔지만 노년에 그곳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아 묵시록으로 불리는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왔을 때 유대인은 각각 4가지 반응을 보였다. 유대의 입법사법행정을 겸하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무시하며 부정했고, 결국 황제의 파견을 받고 부임한 빌라도 총독의 손을 빌어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사두개파로 불리는 제사장들과 지식인 부류들은 자기들의 이권 챙기기에 급급했고, 바라바로 대표되는 열혈당원으로 불리던 정치적 봉기를 꿈꾸던 사람들은 서기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세례요한처럼 종교적 경건주의주의자들은 속 시끄러운 세상을 등지고 사막에서 수도사처럼 살아갔다. 이런 유대민족의 당면한 현실에 나사렛 예수가 구세주로 나타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를 보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의 말 한 마디를 새겨들으며 그의 눈길 손길 한 번에 감격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급진적 개혁주의자가 아니었다. 30년을 철저히 가정의 장남 역할을 감당했고, 공생애로 불리는 3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구세주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의 입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때려 부수라고 험악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는 그 당시 비주류였고 아웃사이더였던 떨거지 같던 12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세계적인 인물이 되게 했다. 그는 돈 안 되는 일을 골라했다. 병원에서 포기한 병자를 고쳐주고 사례비 한 번 받은 적 없고, 제자들을 시켜 먹을 것을 얻어 오게 했다. 그는 혼인잔치에 초대됐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자 항아리에 든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베풀었고, 죽은 나사로도 무덤에서 부활시켰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식민지배 받으며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유대인들에게 군사적 봉기를 주문한 적이 없고, 돈 버는 다단계를 주입하거나 경제 강의를 펼친 적이 없다.


그는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것을 침노하라고 강조했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쥐어지지 않지만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기자 난민같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던 유대인들은 삶의 활력을 얻게 되었고,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믿음이 생기고 비전이 생기자 그들은 삶을 대하는 안목이 달라졌다. 로마 황제와 유대 극렬분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사자의 밥으로 던지며 몰살시키려 했지만 순교하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유대교를 기반으로 했지만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소수였던 크리스천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부활하신 구세주에 대한 믿음과 교회라는 공동체적 결속과 육체적 순결함이었다. 바람피우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며 동성애가 만연해서 타락한 로마의 지배계급들에게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윤리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입양이나 결혼을 통하여 점점 세력이 넓어졌다. 서기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마침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교리는, 그의 선택은 십계명을 요약한 경천애인(敬天愛人)이었다. 사랑과 희생과 겸손이었다. 핵가족화의 가속화와 맞물리는 저출산과 고령화, 기업의 존속의 위기와 취업난과 청년실업, 그로 인한 가계부채의 상승 등 지금 우리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차제 필자는 말하고 싶다.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잃었던 초심을 되찾아야 한다. 편 가르기를 멈춰야 한다. 지도자는 내 편만 아닌 나라와 민족을 품고 웅비할 채비를 마쳐야 한다. 5년 정권에 시행착오를 거듭해서는 안 된다. 비굴할 만큼 지나친 친중 정책과 북핵위기로 호시탐탐 남남분열을 획책하는 북한을 그리 연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세월이 너무 길다. 국민들도 눈높이를 낮춰야한다. 국민 된 권리행사 못지않게 의무도 강조되어야 할 때다. 의무는 내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해서는 머잖아 파국을 막게 된다. 여론도 정의를 내세우며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며 너무 까발려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따스한 미담은 양산할 수 없는가. 정의와 함께 사랑을 선택하고, 심판과 함께 긍휼을 챙길 줄 아는 나라 민족이 되어야한다.


사랑과 겸손과 희생은 실천하기 힘들고 외면하고 싶다. 당장 돈도 안 된다. 내 시간이 낭비되며 육체적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칭찬과 격려도 없다. 그러나 그런 고귀한 가치를 실천한 개인과 사회, 나라 민족이 여태 부국강병을 이루며 황금 같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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