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랍 22일 성탄특집호를 만든다고 분주할 때 이사랑 목사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번 포항지진의 여파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 한 명이 벽돌이 떨어져 머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사망했다. 50 갓 넘은 이 사람은 한국에 연고가 전혀 없는 탈북민으로 우리 교회 성도였다. 날벼락 같은 이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장례를 치르는 중이다”고 전하며 조문을 와 주길 바랬다. 그 소식을 듣고도 마감 때문에 가지 못해 필자는 미안했다. 15년 넘게 탈북민을 보듬어 오고 있는 이 목사는 다행히 몇 년 전부터 교계에 알려져 성도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은 러시아에 연로한 부친이 계시며, 그곳의 10살도 안 된 아들은 이런 소식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고, 보상금을 전해줄 수 없어 국고에 귀속됐다고 한다. 존재본연의 귀소본능을 갖고 있는 탈북민의 영혼이 결국 고향과 가족에 닿지 못한 채 쓸쓸한 빈소에서 남한 사람들의 마지막 영접 속에 하늘나라로 떠난 사연에 눈물이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고인의 사진을 보내주면 신문에 실을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사진은 전송되지 않았다. 그런 후 구랍 28일 이 목사를 만났다. 이 목사는 “망자의 사진을 찍지 않으려 했지만 나중에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 때 증거가 되며 유품이 될 것이기에 슬픔을 억누르며 고인의 영정사진과 장례식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두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매년 북한에 사랑의 쌀 보내기를 시행하고 있는바 이번에도 행사를 잘 마쳤다고 첨언했다. 이 목사가 보여준 사진에는 20여 명의 탈북민들이 페트병에 담긴 쌀을 강변에 모아놓고 합심기도한 후 강물에 띄워 보내는 장면들이 들어 있었다. 그 날 행사를 치르며 적었던 이 목사의 글을 소개한다.
“12월18일 주찬양교회 북한에 쌀 보내기한 소식입니다. 엄청 춥고 눈이 오는 날 바닷길이 열려 하나님 사랑으로 보내진 쌀이 성탄절과 1월1일 설 명절, 하얀 이밥으로 우리 동포들 웃음꽃 모습을 그려봅니다. 포항에서 강화도까지 쉽지 않은 거리지만 한 톨이라도 더 보내고 싶지만 쌀이 없고 경비도 없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매회 때마다 채워주셨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끝으로 쌀을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과 교회 식구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글귀로 마무리 됐다. 서요셉 집사는 매번 포터 트럭으로 이 일에 자원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먹고 살기 막막해 선택했던 탈북민들이 한 번에 남한에 정착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다름없다. 그렇게 지난한 일을 수차례나 열 번 넘게 치러야 겨우 남한 땅을 밟게 된다. 그리고 낯설고 물선 이곳에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다. 다행히 포항에서 이사랑 목사를 만난 탈북민 가족들은 어찌 보면 혈연보다 더 끈끈한 신앙의 하나 됨으로 새로운 가족들이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들이 꿈에도 소원하는바 북한 땅의 가족들과 재회하기를 간절히 희구한다.
울산대교 전망대에 올라 나는 새해의 다짐을 기도로 읊조렸다. 나이 50살이란 세월의 무늬는 이루어지는 것만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살아오며 이루어지지 않는 것까지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2018년 새해 첫 날 전망대에서 울산을 굽어보며 감사의 언어를 시어(詩語)로, 혹은 씨앗처럼 허공에 흩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