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구하노니 그대가 빛이어서 나를 즐거운 그림자로 뛰놀게 하라.

by 박정관 편집장

“자신조차 스스로 자신을 거부할 때 최후로 쓰는 방법론이 자진(自盡)이다” 필자는 그저께 장생포 9번회센터 단골식당에서 점심으로 회덮밥을 시켜먹었다. 식사 후 종이컵에 담긴 자판기커피를 음미하며 울산대교 주변 풍경을 바라볼 때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첫 문장으로 이렇게 서술할 수밖에 없는 뉴스를 전했다. 사연인즉슨 어제 해경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울산대교 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버린 서른다섯 앳된 나이의 청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시신은 울산대교 전망대가 굽어보는 회센터 뒤편의 울산항해상교통관제센터 부근 그물망에 걸려 수습됐다고 한다. 그 순간 커피를 마시던 종이컵을 그러쥔 내 손이 갑자기 천근만근 되는 듯 무거워졌다. 그러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신조차 스스로 자신을 거부할 때 최후의 선택이 자진(自盡)일 테지”하는 장탄식이 쏟아졌다.


자살이라는 말 한번 뒤집으면 살자가 되고, 고질병에 하나 점찍으면 고칠 병이 되건만 참 세상살이가 마음 같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다보면 누군들 답답한 순간이 없을 것이며, 참고 견디기 어려운 고비가 없을 것인가. 겨울의 감기보다 무서운 것이 계절과 관계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이다. 마음의 감기라 이름 붙여진 것은 흔한 감기를 앓듯 그렇게 쉽게 걸릴 수 있는 까닭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거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각자의 사정은 다르다. 그러나 한 번뿐인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주어진 인생이기에 단번에 그 소중함을 내던진다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애잔한 눈물처럼 고이게 된다.


우리 삶의 밤이 지나고 아침에 일출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해가 떠오르는 동녘의 수평선에 새색시 볼처럼 발그레한 붉은 빛이 물들고 잠시 후 두둥실 태양이 하늘에 내걸린다. 새해 첫날 전 세계 사람들은 그 태양의 족적을 좇아 몇 날 며칠을 준비한 후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축포를 쏘며 새해를 맞지 않는가. 언제 잃을지 몰라도 희망을 품고 또 새로운 미증유의 시간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을 신의 반열에 올릴 만큼 지성을 드렸고, 성경의 시편저자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다고 해를 묘사했을 정도로 고금을 막론하고 태양은 추앙받았다. 햇빛은 지상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하는바 그림자와는 불가분의 관계로 설정돼 있다. 해와 비구름은 잘 만나지 못하고 한 쪽이 드러나면 한쪽이 숨겨지게 마련이다.


특이하게 해와 비구름이 엇비슷하게 위치할 때 찬연히 드러나는 것이 반원형의 무지개인데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다. 옛날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그 시간을 붙잡아 두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지만 기술이 일취월장 발전한 지금에야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바로 찰칵찰칵 찍어 사진으로 저장해둘 수 있다. 해가 있더라도 구름에 가려지면 그림자는 생성될 수 없다. 소중한 사람들이 절망이나 슬픔의 구름에 가려지면 우리 삶도 덩달아 우울한 그림자를 만들어 낼뿐이다. 아무쪼록 한번 뿐인 인생이 밝은 태양 아래에서 웃고 즐기며 격려하는 환희로운 시간의 그물을 촘촘히 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구하노니 그대가 빛이어서 나를 즐거운 그림자로 뛰놀게 하라. 나 또한 그대의 그림자를 춤추게 하는 빛이 되리니...

<배기용 사진부장-일산지 일출, 울산대교, 진하 명선도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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