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살이 돋을 때까지

by 박정관 편집장


이금희 발행인과 신문사 사무실에 딸린 부엌에서 간단한 점심을 해 먹었다. 팔팔 끓는 물에 팔도비빔면을 넣고 3분정도 기다린 후 면을 재빨리 건져낸다. 그리고 곧바로 소쿠리에 담긴 면발이 불기 전 두어 번 물에 헹군다. 그 후 면발에 양념장을 발라 이리저리 치댄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좋았다. 그런데 아뿔사, 피를 보고 만다.

여러 가지 야채를 함께 넣으면 맛이 더 좋다는 레시피를 충실히 이행하다 순간, 손톱 끝부분을 같이 썰어버렸다. 혈관을 건드려 피가 고이기 시작했지만 비빔면을 먼저 먹도록 차려 내놓고, 나는 일회용 밴드로 바로 지혈을 했다. 그러나 밴드 두 개로 지혈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이틀 추이를 지켜보았지만 상처가 곪아 전이될까봐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아갔다.

울산병원 로비는 환자들로 붐비고 대기자들이 많아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 겨우 차례가 돌아와 정형외과 의사와 마주 앉았다. 의사는 밴드를 벗긴 후 상처 부위를 보더니 “큰 상처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이 부분은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새살이 돋을 때까지 보름정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옆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아 진료비를 납부한 후 순서를 기다려 겨우 처치실에서 소독하고 의료용 반창고를 덧대는 치료를 받았다. 방금 소독한 부위에서 욱신욱신 통증이 전해져 왔다. 병원 앞 약국에 처방전을 접수하고 그 처방대로 며칠치 약을 받아왔다. 아직 무더위가 남은 여름 끝에 물에 손을 담글 수 없어 세수할 때 조심조심했다.

다친 왼손 검지를 보호하며 생활하자니 불편한 것이 많았다. 노트북 자판을 치는 것부터 운전할 때 핸들에 닿을까 싶어 조심하는 등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그 후 병원 진료를 두 차례 더 받으며 상처부위를 소독하며 의료용 반창고로 다시 갈았다. 샤워할 때는 일회용 투명장갑을 착용하고 손목에 투명테이프로 둘러 방수장치를 끝내고 겨우 일을 볼 수 있었다.

머리 감을 때도 한 손을 쓰자니 평소보다 더 신경 쓰였다. 사지육신이 멀쩡하여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의사의 말대로 보름정도 시간이 지나자 새 살이 돋아 올랐다. 새살이 돋아 오르자 자연스레 혈관을 덮어 피가 나지 않았고, 차츰 돋아나는 새 살 때문에 물에 닿아도 감염증세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새 살이 돋을 때까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해두었다. 그 계획을 이루는 지금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면서 다쳤던 왼손 검지를 내려다본다. 아직 손톱이 더 자라나려면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다. 그래도 새살로 덮인 상처는 다 아물었다. 이렇듯 우리 몸에는 자생력이 감추어져 있다.

일생동안 우리 몸의 세포는 성장과 소멸을 반복한다. 손톱이 자라나고, 머리카락이 자라며, 새 살이 돋는 동안 여름이 지나갔다. 지난여름의 무더위가 얼마나 심했던지 한 10년치 여름을 한꺼번에 겪은 느낌이다. 그러나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은 이제 우리 곁의 동반자로 가을을 데려와 인사를 시켜준다.

삶이란 그렇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들어 절규하고, ‘이 고통이 언제 끝나려나’ 하는 통증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에 새 살이 돋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생력은 본디 하늘에서 부여한 은총이기에 우리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유의미한 발자취를 기록한다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던 자는 풍성한 결실로 소출을 거둘 것이다.

지독한 폭염을 흩뿌려 태양이 얄밉던 사람들도
가을들판 오가는 바람에 용서의 마음이 생긴다.
그 태양이 영글게 한 풍성한 열매들을 보면서
한 번 정도는 감사의 기도를 봉헌해 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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