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큰 양동이로 붓듯이 쏟아졌다. 서문교 난간까지 물이 올라왔고 물살은 도도하게 흘렀다. 서문교는 진주 촉석루 후문 쪽에서 흐르는 남강 물줄기가 샛강으로 가는 데 세워진 다리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때 내 나이 국민학교 3학년, 열 살이었다. 이 다리를 건너야 우리 집에 갈 수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다리 난간을 붙잡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황토색 물은 큰 산이 떠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학교에 갔다. 지금처럼 일기 예보가 사전에 안내되지 못했다. 선생님은 첫 수업을 마치고 큰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학교를 나서자 엄청난 양의 비는 이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다리는 이미 물이 넘쳐흘렀고 나는 오직 이 다리를 건너가야 우리 집에 갈 수 있었다.
어느 한순간도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든지 누가 나를 구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으니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의 일은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우 다리를 건너서 큰길로 나왔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옷은 다 젖어서 물이 줄줄 흐르고 추워서 벌벌 떨렸다. 그 와중에 잃어버린 가방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때의 모습이 아마도 물에 빠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겨우 빠져나온 새끼 생쥐 모습이었을 것이다.
삼십 분은 더 걸어야 우리 집이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컸다. 무슨 상념에 잠겼는지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나는 ‘아버지’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스쳐 지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이불을 덮고 혼자 누워 있는데 아버지와 오빠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들어섰다. 나는 어린 마음이지만 어렴풋이 길에서 '아버지' 하고 부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불을 끌어올리고 숨죽여 자는 척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없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그 시절 그 지점에 가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때 부모님의 마음에는 내가 차지할 빈자리가 없었다. 일남사녀인 우리 집, 오빠가 우리 집에서 전체였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모두 오빠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덟 살이나 적은 내가 오빠를 걱정하고 오빠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까짓 우산쯤이야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늘처럼 비가 세차게 오고 천둥소리가 창문을 흔들면 내 마음도 흔들린다. 오십 년도 넘게 지났는데 오히려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황토색의 물이 산청 덕천강에 넘실거리는 것을 보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마음은 어린아이가 되어 발이 저절로 둑길의 가장자리로 비켜서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배신당한 그런 서러움 같은 것이 안개처럼 내 마음에 스며든다. 눈가는 어느새 빗물인지 눈물인지 주르륵 흐른다.
최근에 읽은 오프라 윈프리의 저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만약 당신이 당신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긴다면 당신의 세계가 완전히 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확신하건대 매일 짧게나마 짬을 내어 감사한다면 크게 감탄할 만한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 SNS에 매일 ‘감사일기 쓰기’를 쓰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감사할 거리를 의도적으로 찾아내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물리적으로 나에게 권위를 휘두르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관심이 전혀 없었을 뿐이다.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딸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자,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로 믿어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억눌린 분노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다 보니 아버지와 마음 따뜻한 일도 있었고, 내가 힘들 때 구원자가 되어 주기도 했다.
미움으로 길고 높은 벽을 쌓다 보니 미움 벽밖에 안보였다. ‘미움이라는 장벽’ 너머를 보니 희미하지만 ‘감사 씨앗’들이 그늘에 가려 있었다. 언젠가 바람과 햇빛과 비를 만나는 날 아름다운 ‘감사 꽃’을 피우리라 상상해 본다.(2023.10.14.<그곳에 내가 있었네>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