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육행정공무원이었다. 대학생들의 학적관리를 하면서 대학을 가지 못한 나의 마음은 늘 갈증에 목말랐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내 마음은 콩닥거렸다. 가까이 야간대학이 있는지, 개설학과는 어느것이 있는지, 경쟁률은 어떤지 공연히 정보를 검색하곤 했다.
그런데 인근 대학에 야간대학 영문과가 개설한다는 것이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원서를 넣었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어느 누구와 의논도 하지 않고 바로 등록금을 납부했다. 그만큼 대학을 가고자 하는 나의 바램이 컸던 것이다. 당시 내 나이 39세, 2녀 1남의 엄마, 남편은 다른 곳에 직장이 있어 주말 부부를 했다. 대학을 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여건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 셋을 키우는 것만도 허덕였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나를 위한 기회라고 확신하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틈나는 대로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니 영어를 잡고 있으면서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았는지 모른다.
남편도 반대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는 것이고 자신이 도와줄 여건이 안되니 좀 있다가 하라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가족 중 찬성을 한 사람은 유일하게 엄마였다. 엄마는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내가 대학 공부를 못 시켜줘서 미안했는데 잘됐다. 근데 힘들어서 어짜노."
"무슨 말씀이세요? 엄마가 고등학교 보내준 것만 해도 엄청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대학도 갈 수 있고, 다 엄마 덕분입니다. "
퇴근을 하고 아이들 저녁식사를 챙겨주고 학교를 가는 일은 버거운 일이었다. 야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12시가 넘었다. 한 번은 집에 오는 길에 차를 타고 신호를 받고 기다리는 사이 도로 위에서 잠들어서 한참을 자고 놀라 일어난 적도 있었다. 매 학기마다 휴학을 해야 하나, 갈등을 하다가 한 번 쉬면 해내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등록금을 입금했다. 막내가 어린이집을 다닐 시기여서 둘째 딸에게 막내 동생 픽업을 부탁했다. 입학에서 졸업의 과정은 여기서 다 쓸 수가 없다. 참 험난했다. 특히 건강이 악화되어 수술을 하게 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죽더라도 나는 대학졸업생이 돼야 한다는 오기 같은 것으로 버텨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목숨과도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었나 싶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드디어 한학기도 휴학을 하지 않고 4년을 다녔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부모님께도 알렸다. 아버지는 척추협착증으로 기동이 불편하기에 오지 못하고, 엄마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고운 옷을 입고 왔다. 나는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엄마에게 입혀드리고 기념 촬영을 했다.
"엄마, 이건 엄마가 해낸 거야. 엄마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를 공부시킨 덕분이야. 이 졸업장은 엄마 꺼야"
"뭐라카노. 니가 얼마나 고생을 해서 받은 건데 내가 공부를 못시켜줘서 니가 고생했다. 참말로 내 딸 대단하다."
남편은 꽃다발을 내 앞에 내밀었다.
"당신이 이렇게 독한 줄 몰랐다. 한두 학기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 처음에 반대했는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정말 대단하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