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참 좋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다들이기까지
심리학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었던 스트로크는 무엇인가요? 종이에 적어보세요.”
‘스트로크’란 에릭 번(Eric Berne)이 창시한 교류분석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심리적으로 접촉과 인정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
마치 몸이 살기 위해 음식을 먹듯, 마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정’이라는 자극, 즉 스트로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사랑받고 싶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했다.
곧 떠오른 건 ‘나 혼자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
그래서 스스로 다짐했던 말들.
‘열심히 해야 해.’ ‘강해져야 해.’
나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전적으로 너를 믿고 도와줄게. 무엇이든 해봐.”
이 한마디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교수는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적은 그 말을, 이 수업 안에서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자원해서 앞에 나와 주세요.”
곧, 작고 귀여운 체구에 늘 수업시간마다 당당하게 질문하고 답하던 한 여성이 앞으로 나왔다.
겉보기엔 자신감 넘쳐 보였지만, 그녀는 예전에 어릴 적 엄마로부터 남동생과 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나는 네가 참 좋아. 이유 없이 그냥 좋아.’”
그녀는 원했다. 조건 없는 인정, 이유 없는 사랑을.
교수는 그녀를 방 한가운데 앉게 하고, 우리는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지금부터 그녀에게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주는 시간이다.
나는 그녀에게 느꼈던 좋은 점들을 미리 메모해두었다.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다른 사람 말에 진심으로 반응한다.
귀여운 얼굴에 피부도 참 좋다.
인상이 따뜻해서 다가가기 쉽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잘 수용한다.
먼저 교수님이 그녀와 마주 앉았다. 교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참 좋아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요?”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무조건 좋아요. 선생님 자체가 보물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유가 뭐죠? 무엇 때문에 좋죠?”
그녀는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얼굴은 굳어졌고, 교수의 말에 의심을 담은 시선을 보냈다.
교수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이 ‘무조건 좋아요’라는 말을 원했기에, 나는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왜 나를 좋아하는지 의심이 들었어요.
어떤 행동 때문에 그런 말을 들었나 계속 생각했어요.”
이후 교수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며 그녀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도록 했다.
“선생님은 귀여워서 좋아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줘서 좋아요.”
“에너지를 나눠줘서 좋아요.”
하나씩, 둘씩.
우리의 말이 그녀의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녀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긍정적인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처음 교수님처럼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는 선생님이 무조건 좋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열린 듯 보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 같아요.”
그리고 내가 메모해두었던 모든 칭찬을 하나씩 건넸다.
그녀는 그 모든 말을 천천히 받아들이며,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그녀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어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가식처럼 느껴졌고, 거짓 같았어요.
왜 자격도 없는 나한테 저런 말을 하지? 싶었어요.
교수님이 시켜서 억지로 말하는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진심처럼 느껴졌어요.
나도 좋은 점이 있는 사람일 수 있구나 싶었고,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교수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배움을 정리해 보자고 했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느낀 바를 말했다.
“긍정적인 스트로크가 부족한 사람은,
막상 그런 스트로크가 오면 그걸 무시합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받고는 싶지만, 실제로 받게 되면 어색하고 낯설고, 믿기지 않죠.
오히려 익숙한 부정적인 말에 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진심 어린 긍정 스트로크가 반복되면
결국 마음의 문은 열리게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서로에게 긍정의 말을 건네야 해요.
그리고 어렵다면, 스스로에게 긍정 스트로크를 주는 연습부터 시작해도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한 ‘사랑 키우기’는 어쩌면 이렇게,
작고 서툴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분에 물을 주어 고운 꽃을 피워내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사랑이란 물을 주어
우리의 존재를 꽃피워야 합니다.'
— 이해인, 「사랑 키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