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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Nov 10. 2023

내가 너를 한번 안아봐도 될까

내가 끌어안고 있는 고통은 진실일까, 아이콘텍트, 배우 장광이야기

생각만 떠올려도 눈물이 핑돌고 귓불이 벌겋게 타오르며, 분노가 치솟는 사건 하나 간직하고 있나요? 버리지 않고 쥐고 있어서 비록 나의 심신이 불타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억울해서 놓지 못하는 사건 하나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잊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가슴앓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것이 항상 보는 가족이라면,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고, 계속 강화시켜 튼튼한 무쇠처럼 만들어 놓겠지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기억이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로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겠지요.


TV 채널A의 프로그램 '아이콘택트' 69회에 출연한 배우 장광과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오늘 프로그램을 보고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아이콘택트'는 서로 오랫동안 오해나 불화 등으로 사이가 나빠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눈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배우 장광은 아들과 함께 마주 앉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배우 장광과 아들은 어색하게 눈을 마주 보고 정해진 시간 동안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시간이 종료되자 나누는 대화입니다.

"아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아빠 관계가 껄끄러웠고 단절된 사이였지."

"아빠는 마음이 아팠어. 초등학교 때부터 네가 나하고 얼굴도 바로 보지 않고 피하고 말을 안 하니."
아들은 말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옆에 놓인 물을 마시고, 한숨을 푹 쉽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큰 숨을 쉬면서 어렵게 말을 합니다.
"관계가 좋지 못하지. 관계가 불편하지. 초등 유치원 때 내 눈높이에 맞게 대화하고 소통했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오랫동안 서로 껄끄러운 사이였고 대면하기를 피해왔습니다. 아들은 27여 년 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어떤 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무슨 사건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그때 온 동네 사람들이 아들을 가해자로 몰아서 손가락질을 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묻지 않았어요. 그중 아빠가 가장 혼을 냈고요.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서 베개를 뜯으면서 울부짖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눈물을 쏟아 냅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고.


그 뒤 아버지는 아들 마음을 달래주려고 편지도 쓰고 불러서 포옹도 하고 했지만 아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은 얼음 마냥 풀리지 않았지요. 어느날 아버지가 갑자기 불러서 안았는데 오히려 불편하고 화가 났습니다. 내 감정 해소가 없이 나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고 자기 마음 편하자고 일방적으로 이러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은 억울했던 그 시간에 멈춰있고, 그 시간의 분함과 미움에 울었습니다. 그 감정이 풀리지 않은 상대에서는 그 어떤 위로도 자상한 말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눌려져 있던 나 혼자라는 생각과 두려운 감정과 화가 온통 마음을 지배하니 다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아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거칠고 다혈질로 살았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니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요. 그 사건이 있던 그때 그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알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면 27여 년이란 긴 세월을 서로 갈등 속에 지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렇다면 배우 장광이 나쁜 아버지일까요? 아버지로서 장광은 열심히 노력했고. 자신의 아버지가 해온 교육방식으로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바른 아들로 키우기 위해 잘못된 길로 갈까 봐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인 줄 알았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어린 아들은 그 일로 마음 문을 닫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키워갔습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은 상처를 핥으면서 웅크리고 27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만일 그때 아들이 그냥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일찍 아들의 감정을 살펴서 풀어주고 미안하다 하고, 진심으로 아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면 청소년기의 전 시기를 울분으로 보내진 않았겠지요.

 

그 아이는 그 순간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결론을 스스로 선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믿을 사람이 못되고 가족들도 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 나는 나 혼자다. 나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강해져야 한다. 앞으로 다시는 아버지게게 또는 가족에게 정서적 지지와 인정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그 각본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장광은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미안하다. 너의 상처를 몰라줘서. 나는 그래야만 하는지 알았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마음에 그런 상처가 있는지 몰랐다. 미안하다. 이렇게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 아직 늦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부터라도 내가 너의 편이 되어주면 안 될까. 나는 지금도 너를 사랑해. 아빠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어렸을 때 너의 상처는 차근차근 희석시키고 앞으로 좋은 일만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러자 아들은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틀어놓으니까 마음이 좀 개운해지네요."
"아빠가 좀 안아봐도 될까."
그때야 아들은 희미하게 웃습니다. 둘은 일어나 포옹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푹 안기지 못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을 사랑한 것에 변함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미워하면 안된다는 죄책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 전체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사건 하나로 한 인간의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절망과 분노와 억울함으로 살아왔다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요.

유년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대화와 소통,  그 어떤 공부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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