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틀릴 수 있어도, 마음의 상처는 진짜니까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귓불이 달아오르며 분노가 끓어오르는 기억 하나쯤,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억울하고, 외면당했다는 느낌.
어떤 사람은 그 장면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놓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 사건은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며, 지금 이 순간에도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진행형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상처를 받는다. 특히 그 상처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생겼을 때, 치유는 더욱 어렵고 복잡해진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해는 더 깊어지고, 반복되는 갈등은 감정을 단단하게 굳힌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 내가 얼마나 외롭고 무력했는가이다.
며칠 전, 우연히 TV 프로그램 <아이콘택트>를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두 사람이 오직 서로의 눈빛을 통해 진심을 전하는 '침묵' 예능으로, 말없이도 진심이 통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독특한 포맷을 가지고 있다. 배우 장광과 그의 아들이 오랜 오해를 마주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오랜 시간 감정적으로 단절된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도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몇십 초의 침묵 끝에, 아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 내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해 주고, 감정을 알아봐 줬다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들이 꺼낸 이야기는 27년 전의 기억이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나쁜 아이로 몰아세웠고, 울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위로는커녕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방 안에서 베개를 뜯으며 울부짖던 그날, 아이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나는 혼자다.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살아야 한다.”
그날 이후 아들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피했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상처받은 채로 내면 깊은 곳에서 멈춰 있었다.
심리학자 다니엘 시겔(Daniel J. Siegel)은 말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감정은 몸에 저장되고,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 감정은 단지 기억 속의 잔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정서의 흔적이다. 어린 시절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로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을 때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그 기억이 정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고, 더 강하게 우리를 지배한다.
장광은 아버지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엄격하게 대했다.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엄격하게 교육받은 대로 자식도 그렇게 교육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날 울고 있던 작은 아이가 있다.
가장 믿고 싶었던 아버지에게마저 외면당했다는 기억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꽁꽁 언 채로 남아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를 피하고 자신의 감정은 억누르며 살았다.
아들과 소원해진 아버지는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화해하자고 안아주고, 편지도 써보고, 미안하다는 말도 건넸지만, 아들의 마음은 닫힌 채였다.
“내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아버지의 위로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감정의 화해 없이 건네는 위로는 때로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먼저 그 감정을 함께 느끼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 감정은 어디에도 없고, 아버지의 감정만 앞세운 위로가 더 불편했어요. 나는 아직도 그날에 멈춰 있었어요.”
그 말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라도 내가 너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를 사랑한다.”
둘은 포옹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포옹에 엉거주춤한다. 어색하다. 하지만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했지만, 그 포옹은 분명 치유의 시작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정서적 유효성(Emotional Valid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감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그 감정이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 감정을 느낄 만했어.” “그럴 수 있지.”
이 한마디는, 억눌렸던 마음에 숨을 틔워주는 시작이 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이렇게 받아주면,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반면, 무시당하거나 조롱받으면 감정 표현은 왜곡되고 억눌리게 된다.
예를 들어, 경찰서 앞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아이는 제복을 입은 경찰이 혼낼 것 같아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그까짓 게 뭐가 무서워?”라고 한다면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경찰 아저씨가 무서워서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가 같이 가 줄게.”라고 한다면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감정을 받아들여주는 정서적 유효성이야말로,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토대가 된다.
억울한 감정, 외면당한 기억, 사랑받고 싶지만 미워하게 되는 죄책감…
그 모든 것은 어린 마음이 겪은 진짜 경험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그런 감정을 느낀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야.”
라고 인정 해주는 것이다.
장광은 아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죄책감도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 전체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사건 하나로 한 인간의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절망과 분노와 억울함으로 살아왔다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유년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대화와 소통, 그 어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진실이 무엇이었든, 누가 옳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이 제대로 ‘받아 들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상처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때로는,
진실보다 감정의 치유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