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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Story

2023년 문학 입문의 해

2023년. 내가 잘한 일

by 운아당

12월의 밤, 창밖이 훤하다. 전등을 켜두었나 했더니 보름달이다. 훤하게 비추는 보름달은 충만하건만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니 마음이 서늘하다. 주어진 시간에서 한 해가 쑥 빠지니 허전해서 그런가 보다. 12월은 헐떡거리며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달이다. 몸과 마음의 먼지를 털고 청소하는 달이다. 버릴 것 버리고 소중한 것 깊숙이 간직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달이다.


2023년 나에게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문학이라는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놀라움으로 만난 해이다.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빠져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바로 보게 된 해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린 날들이 참 많다. 그랬더니 소중한 인연들이 저절로 나에게 다가왔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참 많이 한 해다. 그래서 서늘하고 허전한 12월이 그렇게 춥지만은 않다.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싼다.


정말 우연히 2023년 3월 16일 산청군에서 동화작가 양성반 회원 모집을 보게 되었다. 모집 기간은 15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하루 지났으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문을 두드렸고 동시라는 문학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때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삶의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고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 마음을 다시 느껴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일상의 순간에서 느낀 것을 동시로 쓰면서 마음의 위로도 많이 받았다. 감사하게도 2023년 8월 한국아동문학회 동시 부분 신인상을 받아 시인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작품을 모아 ‘내가 꽃이 되었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러던 2023년 5월 어느날 어린이책을 볼까 하고 지리산 산청 도서관에 들렀다. 그날 우연히 전광판에서 ‘지리산행복글쓰기’에 회원 모집을 보았다. 무엇에 이끌리듯이 ‘이것은 바로 나를 위한 강좌이다’ 생각하고 바로 등록했다. 평소 늘 글쓰기에 갈망해 왔던 나였다. 소설가 이진숙 작가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첫 시간 글제가 ‘나의 꿈 이야기’였다. 여태껏 직장과 가족의 시간표에 나를 맞춰 살아왔기에 나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를 들여다보며 뭘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가만가만 들춰 보기 시작했다. 깊숙이 잠자고 있던 감정들이 꿈틀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글을 낭독하는데 눈물이 북받쳐 읽을 수가 없었다. 매주 한편씩 글을 쓰면서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았다. 마음을 치료하는 시간이었다. 마음에 묵혀 두었던 찌꺼기들을 녹이는 작업이었다. 마음을 열고 함께한 글친구들은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간 듯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었다. 수업 시간에 쓴 글을 모아 공동작품으로 ‘그곳에 내가 있었다’라는 책을 발간하고 감동스러운 출판기념회도 개최하였다.


지리산 행복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지리산 산청에는 어머니 품 같은 기운 때문인지 많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글쓰기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 문학회’에서 글쓰기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매년 문집을 발간해 왔는데 벌써 3집 발간을 했고 올해 4집을 발간할 예정이라 했다. 나에게도 작품을 제출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회원의 대부분이 지리산 행복 글쓰기 글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11월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있는 그대로’ 네 번째 문집을 내고 아름다운 팬션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개최하였다. 내년에는 '천왕봉 문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열정을 품고 글쓰기를 할 계획이라 하였다.


올해 기쁜 일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브런치 작가가 된 일이다. 언젠가 걷기 밴드 리더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는데 몇 번 떨어졌다고 했다.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저 작가라는 말이 나하고는 감당치 못할 타이틀이라 생각했다. 그때만해도 브런치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흘려 들었다. 그런데 글쓰기 인연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어졌다. 브런치에 신청을 했고 2023. 7.18. 11:02.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 어떤 것 보다도 기뼜다.

브런치 합격 메세지


2023년은 나에게로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인연으로 다가온 것들에게 감사가 절로 나오는 해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게 해 준 발자국들이다. 세 권의 책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발간하고, 그분들과 만남의 시간에서 참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행복한 시간을 향유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나다운 시간을 보낸, 진정으로 원하는 자리에 내가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하던 천상병 시인처럼 이제 나도 그렇게 노래 부를 수 있겠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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