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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Story

3일간의 탐정 수업

우리는 살아오면서 황당한 일 몇 번은 겪는다.

by 운아당

30년 전 일이다.

하루는 남편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서 집으로 왔다. 회삿돈을 쓴 적이 없는데 2백만 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돈을 찾을 때마다 출납 정리를 하는데 기록도 기억도 없단다. 그 시절 13평 아파트가 4백만 원이었으니 큰돈이었다. 내 월급이 20여만 원이었다.

그 당시 남편은 사장 비서였다. 제법 큰 회사였고 사장은 대외 업무가 많았다. 남편은 사장을 항시 대기 상태로 수행하였기에 바빴다. 카드도 없던 시절이라 현금을 찾으려면 직접 은행에 가야 했다. 남편은 바쁜 관계로 은행 업무를 경리 k양에게 맡겼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출금전표를 적어주면 k양이 찾아다 주었다. 통장과 인감은 경리가 가지고 있었다.

“그날 분명히 저에게 2백만 원을 찾아오라고 하셨어요!”

k양이 우겼다. k양은 은행에서 돈을 찾아다 주었고, 남편이 그걸 받아서 서랍에 넣는 걸 봤다고 했다. 남편은 최근 그렇게 큰돈이 필요한 적이 없었지만, k양이 강하게 주장하니 기억이 흔들렸다.

평소 인감을 k양에게 맡긴 게 잘못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대출이라도 내서라도 메꾸겠다고 했다. 평소 꼼꼼하던 남편이 돈 관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한 것에 의외였다. 통장과 인감을 책임도 없는 사람에게 그리 쉽게 맡기냐며 쓴소리를 했으나 무슨 소용이랴. 어떻게든 돈을 찾아야 했다.


나는 직장에 3일간 연가를 냈다. 3일 동안 해결하리라 마음먹었다. 남편 말대로 대출해서 메꿀 순 없었다. 금액도 컸지만 무기력하게 당하는 남편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먼저 은행을 찾아가 그날 출금전표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담당자는 보여줄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팀장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내부적으로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어 그러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 어렵게 출금전표를 확인했다. 남편 필체가 아니었다. k양이 고의로 벌인 짓이라는 확신이 왔다.

“k양이 최근에 이사했다더라.”

남편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하나 켜졌다. 새로운 단서를 얻을 수 있나 해서 그녀가 이사한 집을 찾아갔다. 동네에 들어서니 복덕방이 하나 있었다. 거기 들어가 k양 집주소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 집이 전세로 나왔다고 들었는데 볼 수 있을까요?”

“아, 그 집이요? 전세 2백만 원에 벌써 나갔어요.”

k양이 은행에서 인출한 돈과 전세금이 일치했다. 잠정적으로 그 돈으로 전세금을 지불했다는 생각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섣불리 나섰다가 k양이 잡아떼면 헛일이었다. 증거를 좀 더 모아야 했다.


다음날 k양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도 k양이 이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혹시 k에게 돈을 빌려준 적 있어요? 다른 누가 도와주었을까요?”

“아뇨. k가 모아둔 돈이 없어 언니와 부모님께도 부탁했지만 못 구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이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도와줄 형편이 아니라 궁금했어요.”

그동안 일을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K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용히 해결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설득했다. 그 친구는 k양 집안 형편이 좋지 않으니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며 어머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k양 친군데요, k가 이사한다고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했는데 못해줘서 걱정돼 전화했어요. 어머니가 좀 해주셨나요?”

“아이고, 내가 돈이 오데 있어 주겠니. 나도 못해줬는데 어떻게 지가 구했다고 하더라.”

k양도 돈이 없었고 친구와 부모님도 도와주지 않았다.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연가 마지막 날 다방에서 k양을 만났다. 그녀는 너무도 당당했다. 한 치 떨림이 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오히려 나를 옆 눈으로 흘겨보면서 털썩 앉았다.

“은행에서 전표 필체 확인했고요, 이사한 그 집 금액도 알아냈어요. 누구 도움 없이 어떻게 전세금 2백만 원을 마련한 건지 나에게 보여줘야 의심을 벗어날 수 있어요.”

“제가 왜 그걸 당신한테 확인시켜 줘야 하죠?”

“그래요? 피해 없이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그제야 그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제가 고의로 돈을 찾진 않았지만 그쪽이 그렇게 말하니 갚아줄게요. 한 달 여유 주시면 갚을게요.”

그 자리에서 k양은 돈을 가져간 사실을 인정하고 언제까지 갚겠다는 각서를 적었다. 한 달 뒤 그녀는 2백만 원을 내 통장에 입금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선량한 사람은 아닌 행동을 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법대로 신고할까 했지만 아직 젊은 사람이 인생이 구만리인데, 신변에 불이익이 없는 범위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 처리한 것 같다. K양도 그때의 일을 반성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디서 그런 추리력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처음부터 남편을 믿었고, 분명 k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직감이 왔다. 내가 근무한 민원 부서는 업무가 많아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연가를 낸 3일 내에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믿음과 절박함, 이에 뇌가 위기 사태임을 인지하고 완전 가동한 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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