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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그리고 걸어가라

오늘의 발견

by 운아당

예루살렘에는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다.
수많은 병자들이 그 못 주변에 누워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는 ‘기적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38년이나 된 병자가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기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예수는 그 병자에게 물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는 대답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니 저는 낫지 못합니다.”

예수는 그를 못 안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 대신, 단 한 마디를 전했다.
“일어나라. 그리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리고 그는 일어났다.
38년 동안 깔고 있던 자리를 스스로 들고, 자신의 발로 걸어 나갔다.

그 장면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진정으로 낫기를 원하는가.
아니, 나는 정말로 변화를 원하는가.

혹시 나는,
‘낫고 싶다’고 말만 하며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건 아닐까.


상처를 핑계로 모든 걸 미뤄두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 와서 나를 도와주기만을 기다리며,
내 안의 가능성은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 안에도 ‘못’이 있다.
내가 만들어놓은 변명의 자리.
거기 앉아,
“나는 안 돼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요.”
말하며 무력하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예수는 그 병자에게 묻지 않았다.
‘누가 널 도와주었냐’고.
‘왜 지금까지 못 나았냐’고.
묻지 않았다.
단지, **“너는 지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변화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하는 것.
작은 손짓이라도,
잠깐의 숨 고르기라도,
한 발짝 내딛는 움직임이라도,
그것이 ‘기적’의 시작이다.

우리 모두는 일어설 수 있다.
자신이 깔고 누워 있던 오래된 자리,
상처와 핑계와 절망의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다시, 내 마음 깊은 곳에 묻는다.
나는 진정으로 낫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내가 깔고 누워 있던 그 자리를 들고, 내 두 발로 걸어가야 한다.

기적은
누군가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일어나라. 그리고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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