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빛 하나쯤 되어줄 수 있다면

지석이와의 하루

by 운아당

화요일, 처음으로 6학년 교실에 들어갔다.
문득 나의 6학년은 어땠을까 떠올려보니
기억은 흐릿했고,
배우는 게 마냥 즐거웠고
선생님은 무서웠던, 그런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오늘 나는
‘수업방해학생지도’라는 이름 아래
한 아이의 곁에 서게 되었다.
지석이라는 이름의 남학생.

덩치가 크고,
서글서글한 눈,
가무잡잡한 피부.
성큼성큼 걷는 걸음에
나는 짧은 다리로 달리기를 하듯 따라가야 했다.

“지석이가 수업 방해하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처음엔 조금 놀랐다.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던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학 시간, 발화점에 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불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붙을까.
탈 수 있는 물질, 산소, 발화점.
나는 새삼스레 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빠져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석이의 책장을 넘기고,
조용히 칠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수업에 집중하도록 말을 건넸다.

지석이는 실험 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내가 할래!"
적극적인 열정으로 움직였다.
위험한 과산화수소 실험은 다른 아이가 맡게 하고
지석이에게는 촛불을 붙여보라고 했다.
그는
자신 있게,
아주 잘 해냈다.


수업 막바지,
선생님이 ‘시스투스’라는 식물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변을 불태워버리는 식물.
그 이야기를 들은 지석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불 나도 안 나올 거야.
그냥 안에서 죽을 거야.
내가 죽어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뇔 때
나는 가슴 깊은 곳이 서늘해졌다.
그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지석이는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욕을 하며 웃는다.
그 손을 잡고
“지석아, 좋은 말 써야 멋진 지석이가 되는 거야.”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그네를 타는 친구들을
앞에서, 뒤에서 방해하는 지석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규칙을
혼자 깨고 떡하니 타고 내려오는 지석이.

이 아이는
지금 무슨 마음일까.
어떤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상담은 받고 있을까.
약은 먹고 있을까.


나는 자원봉사자의 신분으로
그저 조용히, 깊이 염려할 뿐이다.

지석이가 놓친 과학 수업을
내가 대신 배워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종종
행동만 보고 아이를 판단한다.
하지만 그 말속에, 눈빛 속에
알아채야 할 ‘도움의 언어’가 숨어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라 해도
그 하루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그 존재는
그 누구보다 귀하다.

나는 오늘,
한 아이의 곁에서 배웠다.
도움을 준다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리고 바란다.

그 작은 동행이,
지석이의 하루에
작은 빛 하나쯤은 되어줄 수 있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들아 나는 괜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