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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나는 괜찮지 않다

아들아 니가 살고 내가 가야지. 나를 밟고 일어서거라.

by 운아당

아들의 장례식 뒤에 남겨진 어머니의 시간

태양은 한낮의 정점을 지나며 정자나무 가지 위로 거칠게 내려앉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매미는 숨 가쁘게 울었고, 나무 아래 둥글게 앉은 이들은 누구 하나 부채를 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무더운 오후, 한 노모가 주름진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조심스레 꺼내는 이야기 속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과 상처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눈물과 콧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내가 아무려면 어떠냐. 너희들 가정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아들을 위로하던 그 말은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에게 거짓말처럼 했던 말이었다.


큰아들은 항상 부모님의 수고를 마음 깊이 새기며 살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속을 썩인 일 없이, 스스로 학업에 매진했고, 진주에서 명문고등학교를 다니며 서울의 유명대학에 합격해 교수의 길을 걸었다. 부모는 쉴 틈 없이 농사일을 하며 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냈고, 아들도 그 은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마음 깊이 내려앉은 미안함이 늘 있었다. 어머니가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때, 아들 집에서 며칠 쉬려던 계획은 며느리의 냉혹한 반응에 의해 하루 만에 끝나버렸다. 노모는 큰며느리의 눈치를 보며 “잠이 잘 안 오네. 들일도 있고…”라는 핑계로 곧장 진주로 내려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들은 늘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자신이 더 잘했어야 했다고, 부모님 곁을 지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명절마다 그는 홀로 고향을 찾았고, 부모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퇴직하면 부모님 곁으로 내려가서 지켜드릴게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피로가 잦고 몸이 이상해 병원을 찾은 그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남은 시간이 여섯 달 정도라고 했다.

노모는 팔순을 넘긴 몸으로 서울과 진주를 오가며 아들의 곁을 지켰다. 아들이 병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을 때마다 노모는 그 손을 붙잡고 말했다.

“이 온기만이라도 좋으니, 숨만 쉬고 있어 다오. 절대 나보다 먼저 가는 불효는 하지 말거라. 나를 묻어주고 가야 하지 않겠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야, 아들아. 내가 대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네가 살고, 내가 가야 한다. 나를 밟고서라도 일어서다오.”

그렇게 부르짖던 어머니의 기도는 끝내 하늘에 닿지 않았다. 아들은 조용히, 그러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이 침묵으로 가득했던 그날, 병실에서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

불길 속에 아들의 육신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의식을 잃었고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맑은 정신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이별이었거나, 아니면 외로운 길을 떠나는 아들을 마중하러 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의 장례가 끝나는 날, 겨우 눈을 뜬 아버지는 자꾸만 주위를 바라보며 되뇄다. “내 아들… 1인실로 옮겨주소. 우리 아들, 조용한 데로 옮겨주소.” 그것은 병든 아들이 마지막까지 바랐던, 그러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소망이었다.


큰며느리는 병문안을 오는 친척들조차 불편해했고, 약국 일정을 핑계 삼아 간병도 어머니에게 맡긴 채 매일 퇴근길에 잠깐 들렀다 돌아갔다. 아들이 여러 명과 함께 사용하는 병실이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조차, “소용없는 데 돈 쓰지 말라”며 외면했다. 노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없어도 마지막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게 해주는 것조차 거절해야 했는지, 그 아픈 마음을 어디에도 풀 수 없었다.

노모가 들려준 이 이야기에 정자나무 아래 앉아있던 할머니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간간이 흐르는 콧물 훌쩍거리는 소리와 조용한 한숨만이 정적을 채웠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아픔은 어떤 말로도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그저 눈물로, 가만히 듣는 침묵으로밖에 함께할 수 없었다.

아들은 그렇게 떠났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의 온기를 기억하며 산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날의 마지막 손을 떠올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내가 대신 갔어야 했는데… 내 새끼야, 너무 오래 아팠지… 잘 가거라.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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