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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Jul 23. 2023

나는 괜찮다 니만 잘 살면 2

아들아 니가 살고 내가 가야지. 나를 밟고 일어서거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정자나무 아래, 매미는 더욱 목청을 돋워 울어재꼈다. 그 어느 누구도 손에 있는 부채조차 부치지 않았다. 노모는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 콧물을 닦았다.

“내가 아무려면 어떠냐, 너희들 가정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라고 아들을 다독거렸다. 큰아들은 아내의 모진 행동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자녀들이 있으니 헤어지지도 못하고, 달리 좋은 해결 방법이 없어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다.


 큰아들은 늘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향에서 고생하셨던  부모님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노모가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서 수술 날짜 기다리는 동안, 큰 아들집에 잠시 기거하려 들렀다가 아내의 패악으로  하룻밤 자고 진주로 내려간 것을 내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모는 심장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여 간병인의 돌봄을 받았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 많이 건강해졌다.


 큰 아들로서 고향에서 둘째 아들과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내는 오직 돈 밖에 몰랐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수입도 높았음에도 시부모님에게, 시댁 형제 친척들에게 모질게 굴었다. 명문대학 교육을 받았다고 하나 사람의 기본 도리는 배우지 못했나 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퇴직하면 시간이 많이 날 거니까 부모님 곁에서 모시고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시도록 지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오면 아들은 부모님 앞에 마음 깊이 사죄를 드렸다.


 어릴 적부터 부모 애태운 적이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서 대학 교수가 되었지만, 잘못 만난 아내와의 인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고 부모 형제에게 언제나 빚진 마음이었다. 그런 그 큰아들이 피로가 잦은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6개월 기간을 언도했다. 큰아들은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노모는 팔순이 넘은 몸으로 서울과 진주를 오가며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큰며느리는 진주에서 시동생, 동서, 친척들이 병문안 오는 것도 꺼려했다. 서울로 올라와서 자기 집에서 북적거리고 식사 대접하기 번거롭다는 말이었다. 또한 약국을 핑계로 시어머니에게 아예 남편 간호를 맡기고 퇴근길에 잠깐 들렀다가 자기 집으로 귀가를 하는 것이었다.


 큰 아들은 여러 명이 쓰는 병실을 불편해했다. 아내에게 조용한 1인실로 옮겨 줄 것을 소망했다.  아내는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 돈 낭비한다고 끝내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이 온기만이라도 좋으니 숨만 쉬고 있거라. 절대로 나보다 앞서는 불효는 하지 말거나이, 나를 묻어주고 가야 안 되겠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아들아, 내가 대신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네가 살고 내가 가야 하는데. 나를 밟고 일어서거라”라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아들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애간장 끓는 울음을 우는 노모의 절규가 병실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묵묵히 침대 위의 아들을 지켜보던 늙으신 아버지, 그 무거운 아픔을 견디지 못했을까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아들이 화장터에서 불길 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는 깊은 의식불명에 빠져들었다. 맑은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을까. 아니면 멀고 외로운 길 떠나는 아들을 마중이라도 나간 것일까.


 아들의 장례식이 끝나는 날, 할아버지는 잠에서 일어나듯 깨어나서 비몽사몽간에 자꾸만 주위 사람들을 보며 “내 아들 1인 병실로 옮겨주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노모의 슬픈 이야기에 주위에 둘러앉아 듣고 있던 할머니들의 가느다란 한숨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콧물 훌쩍거리는 소리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2023.11.11.<있는 그대로>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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