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는 그저 자식이 편안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햇빛이 화살촉처럼 쏟아지던 여름 오후, 오래된 정자나무 아래 마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한낮, 땀을 닦으며 숨을 돌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가로워 보였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는 한 노모의 표정은 유난히 지쳐 보였다.
대여섯 명의 마을 어른들이 진지한 얼굴로 귀 기울이고 있었고, 나 역시 조용히 다가가 목례를 하고 옆에 살짝 앉았다. 눈으로 인사를 받은 할머니들은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 노모는 며칠 전 갑작스럽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 병원을 찾았고,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에 따라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 모시고 함께 살고 있는 둘째 며느리가 동행했고, 서울에는 마침 큰아들이 살고 있어 검사 기간 동안 큰아들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검사를 마치고 수술 날짜가 보름 후로 정해졌을 때, 큰아들은 “수술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아버지와 제수씨는 진주로 내려가시고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쉬다가 수술받으세요.”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남편과 둘째 며느리는 내려가고 노모는 큰아들 집에 머물게 되었다.
아들의 집은 최근에 새로 지은 넓은 아파트였고, 노모는 결혼 후 처음으로 그 집에 머무르며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들이 이렇게 잘 사는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집은 평수도 넓고, 일하는 도우미도 있었으며, 가구와 집안 분위기 모두가 호사스러웠다.
하지만 그날 밤, 노모는 며느리가 던져준 낡은 이불을 덮고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밤새도록 며느리가 아들에게 "시골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되지 왜 어머니를 집에 있게 했느냐"라고 따지며 싸우는 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며느리는 좋은 대학도 나왔고, 자존심도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노모에게는 그 모든 며느리의 스펙이 아무 의미 없었다. ‘혹시 내가 서울에 눌러앉을까 봐 저렇게 나오는 건가’, ‘시댁이 가난해서 업신여기는 건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노모는 조용히 아들에게 말했다. “잠이 잘 안 오네. 들일도 있고... 수술 날짜에 맞춰서 다시 올라올게.” 그리고 진주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노모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거칠게 말대꾸를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것도, 자신이 집안의 불편한 손님이 된 듯한 느낌도 모두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노모는 큰아들이 진주에서 알고 지내던, 마음씨 곱고 성실했던 처녀와 결혼하길 바랐다. 하지만 며느리는 적극적으로 아들에게 다가와 결국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고, 결혼 진행 과정에서도 사돈 측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시댁을 배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도 노모는 ‘아들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감정을 삼켰다.
그러나 결혼 후 며느리는 단 한 번도 명절이나 부모 생신에 진주를 찾지 않았다. 명절에는 손님이 많다는 핑계를 댔고, 약국 문을 닫을 수 없다는 이유로 매번 아들만 내려왔다. 안부 전화 한 통도 없었고, 김장이나 간장, 된장을 해 보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명절마다 혼자 내려와 술잔을 기울이다 결국 눈물 섞인 고백을 하곤 했다. “죄송해요, 어머니. 큰 며느리는 그냥 없는 셈 쳐 주세요. 말해도 안 돼요. 제가 잘할게요.”
그럴 때마다 노모는 오히려 아들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 너의 가족이 화목하게 잘 살면 되는 거라.”
그 말은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아들을 더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사랑하는 자식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가슴에 내려앉은 슬픔을 견디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이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스스로 상처를 삼키며 자식을 감싸는 힘. 한없는 희생을 하고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부모사랑이다.
세상은 점점 자식과 부모 사이를 계산하려 들고, 이해관계로 따지려 하지만, 여전히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 조건 없이 ‘괜찮다’고 말한다.
그 괜찮다는 말 뒤에는 참 많은 눈물과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걸, 자식 된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