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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

by 운아당

2025년 2월 24일, 월요일


열두 살의 나에게 쓰는 편지


안녕,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처음으로 너를 깊이 생각한다

사랑하는 님아

너의 집 뒤꼍에는 감나무가 있었지

담장 너머 두식이의 영어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 있던 너

아이엠어보이, 유아르걸 익숙지 않은 소리,

낯선 언어 뜻도 모른 채 따라 읽으며

언젠가 나도 배우고 싶다고 그렇게 너는 꿈꾸던 아이였어


일 년 후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단단한 꿈 안고

고모집을 찾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한 번도 타보지 못한 기차,

주소 한 장 손에 쥔 열두 살의 너 겁도 없이 길을 떠났지

진해로 가는 길, 직행은 없었고,

중간 어디서 한 번 갈아타며 묻고 또 물어 그렇게 도착한 낯선 집

넌 용감한 아이였어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엄마가 보고 싶은 거였어

해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언니, 동생들과 비비던 밤, 길고 배고팠던 그 겨울밤이 그리웠어

너는 홀로 견뎠어

아직 홀로서기엔 야물지 않았던 어렸던 너


가방 속 로빈슨 크루소 읽고 또 읽으며 너는 다짐했지

외로워도,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작은 손으로 어린 조카 등에 업고 달빛 내리는 동네를 어슬렁 거렸지

넌 왜 그렇게도 배움에 목말랐을까

넌 왜 그렇게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을까


그 해 추운 겨울밤

연탄불 위 한약이 다 달았는지 보러 갔다가 약탕기를 흔들었지

뜨거운 약물은 튀어 올라 고스란히 너의 팔을 덮쳤고

밤새 부채질해도 가시지 않던 통증

응급실도 없이 간장만 바른 채 너는 그 밤을 견뎠어

그 상처는 오래도록 흉터가 되어 네 팔에 남아 있었지

볼 때마다 그때의 아픔이 되살아났었지

하지만 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어


팔뚝이 욱신거릴 때 가족이 보고 싶어 편지를 썼지

잘 지낸다고, 행복하다고 고모가 잘해준다고

아버지의 답장이 왔을 때 네 마음은 조금 따뜻했지

그 편지를 간직했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미워했던 너

넌 아이 어른이었어


일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간 날

엄마가 부엌 앞에 서 있었지

달려가 그 품에 안기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어

고모가 쥐어 준 입학금도 되지 않는 돈,

엄마는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꼭 잡았어

넌 말했지 “꼭 갚을게, 엄마 중학교 보내줘”

그 순간,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슬쩍 눈물을 훔쳤어

그리고 돌아선 너를 꼭 안아주었지 “대단하다, 내 딸”


열두 살의 림아

넌 정말 훌륭했어

작은 우물 안 올챙이였던 네가 세상을 어떻게 알았겠어

다른 사람도 다 우리 가족 같은 사람이려니 했겠지

잘 견뎌낸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배우고 싶어 했던 너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때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고맙다, 내 아이 사랑한다, 내 아이

이제는 내가 너를 지켜줄게 너를 꼭 안아줄게

무엇이든 다 해도 돼

내가 도와줄게


너를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운아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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