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 기둥이 있는 영주 부석사

2. 추석여행, 영주 부석사

by 운아당
바위가 떠있는 형상

아침 7시경 눈을 떴다.
커튼을 걷으니 초록의 산등성이가 바로 앞에 있었다.
어제는 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가 묵은 호텔은 문경의 산 아래에 자리한 곳이었다.

누룽지를 끓여 간단히 아침을 대신하고,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부석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차 안에는 전날 챙겨둔 사과 향이 은은히 퍼졌다.
아침 공기와 함께 껍질째 베어 문 사과는 유난히 싱그럽고 달았다.
아이들이 짐 많이 들지 말라고 했지만, 사과만큼은 꼭 챙겼다.
결국 그 사소한 고집이 아침을 상쾌하게 열어주었다.

뒷좌석에 세 명이 앉으니 큰딸이 가운데 자리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아이들 편하게 하려고 양쪽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 역시 ‘엄마’였다.
운전하는 둘째는 첫 장거리라 그런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문경을 떠나 약 두 시간을 달려 영주에 닿았다.

부석사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8살 손자는 다리가 아프다고 약간 힘들어했다.
비는 가늘게 내리고, 길은 젖어 있었다. 은행이 무수히 떨어져 냄새가 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많았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그 길을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녀의 부축을 받으며, 누군가는 지팡이를 짚으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마치 인생의 오르막 같았다.

나도 다리가 아팠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부석사는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세상이 멀어지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 길 끝에, 마침내 무량수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기둥을 바라보았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기둥은 배가 나온 듯 볼록했고, 오래된 목재의 결이 묘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그 기둥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은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그 앞에 서면, ‘여기까지 와서야 시간이 멈춘다’는 생각이 든다.
천 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무량수전은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한 점의 교만이 없었다.
낡음 속에서만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그 오래된 건물이 묵묵히 말해주는 듯했다.

부석사라는 이름처럼, 이 절은 ‘떠 있는 돌’의 전설을 품고 있다.
의상대사가 화엄의 뜻을 펼치기 위해 절을 짓자, 그를 흠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용이 되어 절터를 떠받쳤다는 이야기. 전설이지만 어쩐지 그 여인의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사람의 마음에 실제 그런 힘이 있는 게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를 지탱하고 떠받치는 마음.
그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부석사에는 시간의 결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
삼국의 불심, 고려의 장인정신, 조선의 침묵,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우리의 발자국까지.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부석사가 품은 ‘머무름의 철학’이었다.

바람이 산문을 스쳐 지나가고, 절 마당의 노송이 천천히 가지를 흔들었다.

“머물러도 좋고, 떠나도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다만 ‘살고 있다’는 것.”


내려와 초입에서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로 시작하는 성경말씀이 적혀있는 서각을 샀다. 둘째 방에 걸어둘 요량이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에도 들러보려 했지만, 초행이라 길이 익지 않아 밝을 때 포항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점심은 ‘화산대지’라는 양식집에서 먹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주차요원이 분주했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여기가 활금돼지 맞나요?”
젊은 주차요원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화산대지입니다!”
그 말을 듣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피자와 파스타를 시켰는데 맛이 좋았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기뻤다.
둘째는 긴장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이제 포항으로 가자”라고 말했다.


내비게이션을 포항 죽도시장으로 맞추고 출발했는데 이상하게도 고속도로가 나오지 않았다.
국도의 어두운 산길만 이어졌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끝까지 가보자”며 그대로 갔다.
결국 네 시간 가까이 달려서야 죽도시장에 닿았다. 도착할 무렵엔 이미 어둠이 깔렸다.
둘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대게를 먹기로 하고 ‘갈릴리 식당’에 들어갔다. 세트 3인분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둘째는 피로와 긴장이 겹쳐 입맛이 없어 보였다.
식사 후에도 숙소까지 두 시간을 더 가야 했기 때문에 어두운 길을 운전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으리라.
서로 “조금만 더 힘내자”며 위로했다.


숙소는 다행히 호미곶 근처였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의 ‘덕운펜션’.
1층은 작은 횟집, 2층은 투숙객이 머무는 집이었다.
시골스러운 아늑함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창문 너머로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파도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고,
그 소리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내일은 포항 여행이다.
바다의 아침을 기대하며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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