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추석여행, 포항 호미곶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멀리서 밀려오는 물결이 해변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그 모습이 마치 진군하는 병사들 같았다.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햇반과 김치, 멸치볶음, 갈비탕, 김치찌개, 김을 차려
제법 근사한 아침상을 만들었다. 남은 사과도 깨끗이 씻어 그릇에 담았다.
차 안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 챙겨온 것이 사과였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저 흐뭇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누렸다.
이윽고 짐을 정리하고 호미곶으로 향했다. 넓은 광장에 바람이 불어왔다. 새천년기념관이 보여 안으로 들어가니 포항의 옛 사진과 수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참을 둘러본 뒤, 바다 쪽으로 나가니 갈매기 떼가 우리를 맞았다.
동해의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가슴이 탁 트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다 위에 세워진 거대한 손이었다. 처음엔 조금 기괴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듯도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가락 끝에 갈매기가 앉아 있었다. 파도와 새, 그리고 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손은 ‘상생의 손’이라 불린다고 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야 함을 상징하는 손이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모습은 받아들이고, 나누고, 공존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
그래서 이 손은 ‘기원’, 새로운 시작과 생명의 재탄생을 뜻한다고 했다.
해가 손바닥 위로 떠오를 때, 마치 인간이 빛을 맞으며 새로운 하루를 품는 듯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또 하나의 의미는 ‘공존’이다. 호미곶에는 사실 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바다 위에, 다른 하나는 광장 안 육지에 있다. 바다의 손은 자연을, 육지의 손은 인간을 상징한다.
두 손이 서로를 향해 마주 서 있는 모습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 손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자연 속에서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고 있는가.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 손짓으로 가능할까.”
손은 인간의 행동과 연결의 상징이다. 잡고, 건네고, 어루만지는 모든 행위는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호미곶의 손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호미곶의 손은 해를 붙잡기 위한 손이 아니다.
오히려 빛을 맞이하고, 세상과 화해하기 위한 손이다.
인간이 자연과 마주 서서, 함께 숨 쉬려는 손짓이다.”
햇살이 바다 위에 내리쬐며 수많은 반짝이는 보석을 만들어냈다.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바다는 거대한 보석상자처럼 빛났다. 그날 나는 그 보석을 마음 한가득 담았다. 사람들은 새우깡을 던지며 갈매기들을 불렀다.
갈매기들은 주위를 맴돌며 어느 것을 먹을까 망설이는 듯했다.
그 장면이 묘하게 인간 세상과 닮아 있었다. 욕심과 경계, 그리고 작은 용기의 순간들.
호미곶을 떠나며 마음이 새로워졌다. 마치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게를 넉넉히 시켜 실컷 먹었다.
둘째도 긴장이 풀렸는지 “오늘은 정말 맛있다”며 웃었다. 어제의 피로가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옥거리를 천천히 둘러본 뒤 진주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리는 밤길, 차 안은 조용했지만 평화로웠다.
집에 도착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떠날 때의 나와는 조금 다르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
익숙한 이불 속에서, 편안한 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