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나아가기까지

구역장 일기 1

by 운아당

2025년 12월 5일, 금요일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해거름 무렵이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으나,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놀랐다.

“집사님이 구역장을 맡아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말은 간단했지만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교회의 여러 직분 앞에서 한 걸음쯤 물러서 있던 사람이다.
그저 성가대에서 한 달에 한 번 찬양하는 일조차 조심스레 받아들일 만큼 신앙 앞에서 아직 미숙한 존재라고 여겨왔다. 주일 예배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봉사는 바라보기만 하는 데 익숙했다.


그런 나에게 구역장이라는 직분은 감히 다가설 수 없을 만큼 높은 자리처럼 느껴졌다. 지금 나의 구역장이고 나의 부모님을 전도하신 강 수애 권사님의 헌신적인 봉사를 보면 하늘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는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경험도 부족하고 신앙도 깊지 않아 걱정이 됩니다만, 그래도 교회 사정이 그렇다면 목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주저함보다 먼저 움직인 말이었다.
목사님은 고맙다며 여러 차례 인사를 건넸고, 1~2월 중에 있을 교육을 통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나를 격려했다.


전화를 끊자, 현실감이 늦게 밀려왔다. 정말 내가 구역장을 맡게 되는 것일까. 그 직분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5살 무렵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교까지 학생회의 여러 임원을 맡아가며 비교적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신앙이 다른 집안이라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고 예배당 문턱은 나와 먼 자리처럼 느껴졌다.

퇴직 후에야 변화가 찾아왔다. 유교적 전통이 강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년에 교회를 나가 세례를 받고 평안히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공백 때문인지, 나는 늘 새 신자처럼 서먹했고 뒤편에 조용히 앉아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지내는 것이 익숙한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이상한 떨림이 일었다.

지난 2년은 글쓰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시간이었다. 지자체 문화예술 지원금을 받아 책을 발간하고,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묶어 개인 문집 세 권의 발간했다. 그리고 문학회를 정비해 회칙을 만들고 매달 두 차례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연말에는 문집까지 펴내며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에 매여 이렇게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월 '기도의 삶' 공부를 마치면서 기도에 대해 새롭게 눈이 열렸다. 특히 중보기도에 담긴 깊은 의미와 성경적 근거들을 배우며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갈망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기도와 성경을 더 깊게 배우고 싶었다.

이 변화는 조용히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났지만 분명했다.


그 무렵 문학회의 연말 총회가 열렸다. 나는 두 해 동안 헌신해 온 사무국장 직을 사임했다. 한 번 더 맡아달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이제는 다른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내적 확신이 더 강했다. 그 순간 나는 사회적 역할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목사님의 전화가 온 것이다. 그 흐름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문학회 일을 내려놓은 시점, 성경을 펼치기로 한 결심, 그리고 이어진 구역장 청빙(請聘), 이 모든 일이 마치 자연스럽게 정해진 순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시간을 조용히 이끌어 정해진 자리에 놓아두고 간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큰 소리 대신 미세한 바람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 부르심이 일상 속에서 차례로 배열된 사건의 형태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새로운 길의 문턱 위에 서 있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오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 누군가 미리 준비해 두신 길 위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야 나는,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내 삶에 새겨 두신 페이지를 조용히 펼쳐 보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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