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교회를, 살아있는 믿음으로

10일,

by 운아당

어린 시절의 나는 교회를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한다. 찬송가 소리와 예배당의 분위기, 어른들의 기도 소리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결혼하면서 교회는 점점 내 삶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믿음은 기억 속에만 남은 채 몇십 년을 태신자로 살아왔다.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신앙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나는 혼자의 삶에 익숙해졌다.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설렘보다도 어색함과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낯선 두려움이었다. 작은 교회를 다녔던 어린 시절에는 교회 가면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함께 모여 다음 예배시간까지 놀거나 성경말씀 암송을 하거나 했다.

그때 그 시절에 기억은 안식처 같은 곳이었기에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내가 다시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예배시간에 나는 예배자라기보다 관객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새해를 맞아 목회자 서신의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히브리서 10장 24절에서 25절을 읽을 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는 말씀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한다는 말에서 '격려'라는 말의 의미를 '불러서 곁에 있다'라는 의미와 '서로 자극하고 다듬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서로를 자극해서 서로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라고 해석해 주셨다.


이 말씀은 신앙이 혼자만의 결심이나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오랜 시간 혼자 살아오는 데 익숙해졌던 나는, 믿음마저 혼자 감당하려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다시 공동체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신다. 누군가를 돌아보고, 또 누군가의 격려를 받으며, 누군가를 격려하며, 함께 자라 가라고 하신다. 신앙을 떠났던 시간만큼이나, 이제는 함께 믿는 시간을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은 특히 나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했다.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수많은 주일들, 예배와 무관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초대처럼 느껴졌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다시 모이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약속처럼 다가왔다.


또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말씀 앞에서는 겸손한 결단이 생겼다. 이미 많은 시간을 돌아왔지만, 그렇기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더 소중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늦게 돌아온 만큼 조급해지기보다, 한 걸음씩 믿음 안에 뿌리내리고 싶다. 보여주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신앙을 배우고 싶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어릴 적 알던 하나님을 기억 속에만 두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나기를. 오랜 태신자의 시간을 지나 다시 교회로 돌아온 이 자리에서,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 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하겠다. 아직은 서툴고 낯설지만, 모이는 자리를 지키며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성장하는 공동체 삶을 살고자 한다.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늦었지만 괜찮다, 다시 함께 가자”라며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 주시는 것 같다.


히브리서 10: 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2026. 1. 4. 목회서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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