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9일, 2026. 1. 4. 설교 말씀을 묵상하며

by 운아당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최우의 만찬에서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새해 첫 주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시작합니다.
새해라는 말이 주는 설렘 속에서도, 이 말씀은 유난히 제 마음을 깊이 붙잡습니다.
기대와 계획보다 먼저, 예수님은 제게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저는 가끔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약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을 알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무엇을 남기고, 누구를 떠올리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날이 바로 다음 날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고, 자신이 세우신 제자 가롯 유다가 배신하여 팔아넘길 것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을 오르실 길, 조롱과 폭력, 피 흘림과 죽음이 눈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무거운 시간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의 시선은 자신에게 닥칠 고통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실 제자들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내일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것도 억울함과 모욕 속에서 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두려움에 떨거나 분노하거나,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힘을 쏟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고, 끝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사랑하기를 선택하셨습니다.


마지막 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십니다.
그 당시 사막 지역을 걸어 다니면 발은 쉽게 더러워졌고, 손님이 오면 종이 발을 씻기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날, 종은 없었고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만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서 발을 씻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의 먼지와 땀, 피로와 부끄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였고,
신분이 낮은 종의 일이었으며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당황했고, 제자들은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자리다툼과 비교, 자존심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발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씻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남기신 새 계명이었습니다.


이 계명은 새롭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 사랑의 기준을 분명히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가장 낮은 종의 자리에서 제자의 발을 씻기는 사랑,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
배신을 알면서도 끝까지 품는 사랑입니다.
감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의지와 결단, 그리고 희생으로 드러나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제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저는 쉽게 말합니다. 사랑하겠다고, 용서하겠다고.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판단하고,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풀리지 않는 분노와 서운함을 쌓아두고 살아갑니다.
섬기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하고,
발을 씻기기보다 내 발이 더 깨끗하길 바라는 옹졸한 마음이 제 안에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주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명령만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사랑은 제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제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삶으로 보여주신 방식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일상의 관계 속에서
저는 그 사랑을 이어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은 거창한 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발 앞에 제 마음을 낮추는 일,
말 한마디를 아끼고 먼저 손을 내밀며 이해하려 애쓰는 작은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옹졸하게 닫혀 있던 제 마음의 문을,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조금씩 열어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 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남기셨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길,
세상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함으로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 벽두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겸손히 받아 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와의 관계 속에
오랜 세월 쌓아두었던 불평과 서운함, 비난을
사랑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결단합니다.
사회 속에서 미워하고 질투하며 판단했던 마음 또한
사랑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의지를 내어봅니다.


믿고 구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제 삶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제자임을 알 수 있는 표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제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기를,
십자가를 향해 가시던 주님의 수건을 이어받은 제자로 살아가기를
오늘도 조용히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새해의 첫걸음을 사랑의 말씀 앞에 멈추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 제 삶을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여전히 제 마음을 지키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문을 닫고,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옹졸한 마음이 제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발 앞에 무릎 꿇으시고 사랑으로 섬기셨던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끝까지 사랑하기를 선택하셨던
그 사랑 앞에 오늘 제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이 사랑을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이미 제 마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닫혀 있던 제 마음의 문을
성령의 능력으로 열어 주옵소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일상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말보다 행동으로, 판단보다 긍휼로,
자기주장보다 섬김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작은 순종 하나라도 기쁨으로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주님의 제자임을
사랑으로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 사랑이 새해의 다짐으로 끝나지 않고,
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지게 하소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님,
“서로 사랑하라”는 그 음성에
오늘, 다시 한번 순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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