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창세기 31장~35장
성경에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처음부터 반듯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어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그저 착한 마마보이였는지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는 장자인 형 에서에게 집안의 축복을 주려 했지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아버지를 속입니다. 시력이 약해진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 야곱에게 축복을 내리고 맙니다. 그렇게 얻은 축복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을 남겼고, 곧바로 형의 불같은 분노가 따라왔습니다.
형 에서는 자신의 축복을 뺏어간 야곱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집을 떠나 도망치듯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무려 스무 해를 보냅니다. 그곳에서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하고 성실하게 양을 보살핍니다. 겉으로 보면 안정된 삶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종처럼 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내 라벨를 얻기 위해 14년을 일한 것을 보면 야곱은 참 고지식한 사람이기도 해 보입니다. 오래 머무르며 열심히 일했지만 외삼촌과 그의 아들들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이었고, 안전해 보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잃어 가는 공간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살던 라반을 떠나는 장면은 결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내딛는 발걸음에 가까워 보입니다. 믿음의 선택이라기보다, 지친 사람이 마지막으로 옮기는 자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것은 야곱의 결심이라기보다 삶이 그를 더 이상 그 자리에 두지 않았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인생의 전환은 우리가 용기를 내서라기보다, 더는 머물 수 없어서 일어납니다.
라반을 떠난 야곱 앞에는 또 하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과거로 되돌아가는 길이었고, 그 끝에는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잊고 싶었던 얼굴, 두려워 피하고 싶었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삶은 종종 우리가 덮어 두었던 문제를 다시 꺼내 놓습니다. 그것은 벌처럼 느껴지지만, 어쩌면 회복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도망 나왔던 그곳, 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회피했던 그 문제를 만나서 해결해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길목에서 야곱은 얍복강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그는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일 것 같은 두려움에 가족과 재산을 분할하여 먼저 강 건너로 보내고, 혼자 남습니다. 더 이상 의지할 사람도, 계산할 여지도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이름 모를 존재(천사)와 씨름을 벌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밤새 이어진 씨름 속에서 야곱은 점점 깨닫습니다.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자기 힘으로 인생을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싸움의 끝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립니다. 그는 절뚝거리며 걷게 됩니다. 보통이라면 실패의 상처로 숨기고 싶을 모습이지만, 성경은 그것을 부끄러움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야곱이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표시가 됩니다.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걷게 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다시는 자기 힘만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함인 듯합니다. 상처는 남았지만, 방향은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깊은 경험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야곱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폭력과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들은 가해자들을 죽이고 돌아옵니다. 한 사람이 변했다고 해서 가족 전체가 곧바로 성숙해지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는 침묵하고, 아들들은 분노로 행동하며,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이 장면은 불편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야곱의 침묵은 악의라기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회피처럼 보입니다. 그는 갈등을 감당할 힘이 없었고, 상황이 지나가기를 바랐던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삶은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부름을 받습니다. 처음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벧엘로 돌아가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도망치던 시절,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그 자리로 말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다시 듣습니다.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너는 바뀌었다”라는 의미로 이름을 이스라엘로 부르리라고 하셨고, 다시 벧엘에서 너는 “너는 여전히 그 이름이다”라는 의미로 다시 그 이름, 이스라엘을 부르며 정체성을 확정시킨 것입니다.
이미 한 번 받은 이름이지만, 다시 불러 주어야 할 만큼 그는 흔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름은 그의 성취가 아니라, 그를 향한 약속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이었습니다. “너는 여전히 그때 그 사람이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름을 다시 부른다는 것은,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다시 알려 주는 일과도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완성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떠남도, 실패도, 씨름도, 침묵도 모두 과정이었고, 어떤 힘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사람을 다시 세워 갑니다. 단번에 바뀌지 않아도, 넘어져도, 절뚝거려도, 다시 걷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을 쓰시는 분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떠남도, 씨름도, 실패도, 침묵도 모두 과정이었고,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야곱을 이스라엘로 세우셨습니다. 신앙은 단번에 완성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불러 주시는 이름을 붙들고 걸어가는 여정임을 배우게 됩니다.
나의 걸음이 여전히 불안정하다 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해도,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벽하게 걷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다시 걸어가고 있는가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