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한민

7일

by 운아당

오랜만에 아무 약속도 없는 한가한 날이었다. 한 해의 숙제를 모두 마친 사람처럼 마음이 느긋해졌고, 이 여유가 참 좋았다. 평소 틈나는 시간에 종종 보던 기독교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 유튜브 채널을 켜 두었고, 그날은 배우 고한민의 간증이 흘러나왔다.

화면 속 그는 키가 자그마하고 몸이 단단한, 조금 마른 체형의 사람이었다. 어딘가 귀염 한 인상이었고, 처음에는 그저 담담하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자, 마음이 갑자기 울컥했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했고, 어머니는 미용실을 운영했다. 술을 가까이하던 아버지, 그럼에도 아들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형이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 돌아가는 길은 사십 분, 산을 넘으면 십오 분. 그는 달리기를 잘했고, 국민학교 체육대회에서 늘 일등이었다.

육 학년 형들까지 이겼던 아이. 반에서 일등을 했던 날, 그러나 엄마는 오지 않았다. 형과 둘이 빵과 우유를 들고 테니스장 뒤 잔디에서 울며 먹던 장면, 친구들의 손가락질, “엄마도 없이 먹는다”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집안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술과 분노, 폭력이 쌓였고, 결국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일 학년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빨리 무너졌다. 도시락은 형이 싸 주었고, 아버지는 새벽에 일하러 집을 나갔다. 부모의 부재 속에서 자라야 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만날 수 있었고, 이혼은 하지 않은 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친할머니가 양육을 맡았고, 할머니는 절에 다니는 보살님이었다. 아버지는 간질이 있어 발작이 오면 할머니가 늘 곁을 지켰다.


초등학교 삼 학년 무렵, 늘 같은 옷을 입고 등교하던 그에게 체육 선생님이 체육복을 가져오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에게 체육복을 찾으러 갔지만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는 며칠째 소식이 없었다. 실종신고를 하고 어른들이 창문을 뜯고 들어간 방에서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그날 그는 초등학교 삼 학년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 같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 뒤로 삶은 떠돌이가 되었다. 큰집과 작은 집을 전전했고, 아버지는 술에 잠겨 지냈다. 어느 날, 집안 모임에 갔다. 아버지는 강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사라졌고, 물속에서 발견되었다. 익사였다.


그는 그렇게 부모와 할머니를 모두 잃었다. 형은 형이자 아버지였고, 엄마였고, 삶의 버팀목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며 새벽마다 절의 기도 소리와 약수터 물을 길어오는 일상이 이어졌다. 외할머니는 엄격했고, 아이의 삶은 늘 긴장 속에 있었다.

그 무렵 교회를 오가며 태권도를 시작했고, 한 관장님을 만났다. 아무 대가 없이, 아이에게 눈치 주지 않으려 오히려 용돈을 넣어주며 훈련시켜 준 은사였다. 그는 태권도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시련이 왔다. 군대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연골이 거의 사라졌다. 스무 살에 장애 등급을 받았다. 태권도를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그는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로에서 18년의 무명 생활, 하루에도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결혼 후에는 떡볶이집을 열어 생계를 유지했고,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했다. 그러나 꿈을 놓지 않았다. 영화 오디션을 수도 없이 봤다. 그는 말했다. “아내는 모태 신앙인으로 믿음이 좋았어요.” 자신의 신앙은 미약했지만, 아내의 믿음이 그를 하나님께로 이끌었다고 했다.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지던 시간, 그는 가진 돈의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드렸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아도 새벽기도는 나갔다. 그러다 아이와 함께 시작한 달리기가 인생을 바꾸었다. 매일 달리기, 천일 달리기. “가을은 또 한 번 꽃을 피우는 봄이다”라는 말이 그에게는 삶의 고백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전란'의 일본어 통역사 역할. 일본 간사이 사투리, 그의 삶에 스며 있던 언어들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어머니가 일본에 건너가 미용일을 했기에 일본 사투리를 자주 들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 간증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오래, 이렇게 깊게 이끌어 오신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내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나 쉽게 낙심하고, 얼마나 빨리 포기하려 했던가.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말하고,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가한 날, 우연히 들은 간증이었지만, 그날 이후 내 신앙은 다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긴 시간을 건너 결국 자기 자리를 마련하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는 사람은, 대부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빠르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걸음이라면 그 길을 신뢰하며 걷고 싶다고. 그의 이야기가 내 신앙의 거울이 되어, 다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


주님,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신실하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버려진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
끊어진 것 같았던 관계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던 상처들 속에서도
주님은 한순간도 그를 떠나지 않으셨음을 믿습니다.


주님,

배우 고한민에게 주님의 큰 은혜와 평강을 부탁드립니다.

배우 고한민이 움직이고 머무는 곳 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풍성이 느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그의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큰 축복을 내리사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주소서

하나님의 큰 재물도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게 하소서


주님,
그의 간증을 들으며
제 신앙을 돌아보게 하소서.
제가 너무 쉽게 낙심하지는 않았는지,
주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조급함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제 마음을 비추어 보게 하소서.

고난 속에서도 사람을 붙여 주시고,
아내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로 이끄시며,
포기하지 않는 걸음 위에
마침내 주님의 때를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더디지만 정확하고,
조용하지만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주님,
저의 삶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지금 이해되지 않는 시간과
아직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결과보다 관계를 붙들게 하시고,
성공보다 순종을 선택하게 하소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빠르지 않아도
주님과 함께라면 괜찮다는 믿음을
제 삶의 고백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 들은 이 간증이
감동으로만 남지 않게 하시고,
저의 기도와 삶의 방향을
다시 주님께로 돌이키는 이정표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때를 신뢰하며
오늘도 한 걸음 걷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2025.12.27,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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