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6. 1. 18. 설교말씀 묵상
기도는 늘 어려움이 생길 때, 그저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막막할 때 붙잡는 마지막 말, 그것이 기도라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기도가 그런 순간적인 외침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했다.
리빙스턴의 말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바로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나와 부딪히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의 시간을 요구하는 그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실 때 늘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이웃을 향한 실제적인 행위였다.
그 구체적인 사랑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도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야고보서는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병든 자가 있느냐 묻는다. 그리고 혼자 견디라 하지 않고, 서로 기도하라고 말한다. 몸의 아픔은 인간이 겪는 고통 중 가장 직접적이고 깊은 고통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순한 섬김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이었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수님은 가르치셨고, 동시에 치유하셨다. 병든 자를 보시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병을 고치는 능력을 예수님께 부어 주셨고, 기도하는 공동체에도 그 은혜를 나누어 주셨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플 때, 혼자 숨기지 말고 공동체에 알리는 것, 고난당할 때 기도를 요청하는 것, 그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살아 있는 신앙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머리가 아니라 삶으로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구원의 공동체이며, 사랑의 공동체이고, 치유의 공동체다. 모든 치유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서로를 세워 가도록 공동체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함께 보며, 교회가 사랑과 치유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도록 하신다. 그래서 구역이, 소그룹이 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하나님은 경험되어야 한다. 기도하며 응답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이다. 오늘 말씀은 기도의 세 가지 모습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첫째는 믿음의 기도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믿음은 혼자 오래 붙들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있으면 믿음은 약해진다. 그래서 함께 기도해야 한다. 구역 식구들과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믿음은 다시 살아난다.
둘째는 죄를 고백하며 드리는 기도다. 모든 질병이 죄 때문은 아니지만, 기도 중에 떠오르는 죄가 있다면 회개해야 한다. 개인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성찰해야 할 몫이지, 이웃을 향해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타인을 정죄하는 태도는 기도를 막는다. 개인적으로, 서로 간에, 공동체적으로 각자의 회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구역 기도가 가장 깊은 응답의 자리가 된다.
셋째는 간절한 기도다. 엘리야가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간절함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간절한 기도는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응답이 올 때까지 하나님 앞에 머무르게 한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다. 기도는 혼자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서로 기도함으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서로서로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자가 되자.(야고보서 5장 13–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