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15. 레위기를 읽고

by 운아당

레위기를 읽으면서 나는 자주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지켜야 할 것은 너무 많고,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죽음을 맞으며, 말씀은 반복되고 규례는 빽빽해서 하나님이 때로는 너무 엄격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레위기는 부드럽게 다가오는 책이 아니라 날카롭고 단호해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정해지지 않은 불로 드린 제사 하나, 규례를 어긴 한 순간으로 사람이 죽는 장면 앞에서 하나님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요구하시는가”라는 시선으로만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레위기는 죄인에게 먼저 주어진 책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책이었고,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건져냄을 받고 피로 구별되었으며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에 이 말씀을 받았다.


레위기는 그 다음 이야기였고, “이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겠다”는 선언에서 시작되는 책이었다.

문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연약하고 죄 많으며 죽음을 품은 인간 한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 데 있었다. 그렇게 보니 레위기의 수많은 규례와 경계는 인간을 밀어내기 위한 벽이 아니라 함께 있기 위해 마련하신 안전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불은 잘 다루면 따뜻함이 되지만 아무렇게나 다루면 죽음이 되고, 전기는 편리하지만 함부로 만지면 사람을 쓰러뜨리듯, 레위기에 등장하는 죽음의 장면들은 하나님이 잔인해서라기보다 거룩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강력한 능력인지를 보여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은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감정이 아니라 생명이었기에 가까이 오되 가볍게 오지 말라고, 예배하되 자기 방식대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레위기의 규례들은 완벽한 사람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실패할 사람들을 이미 알고 주어진 길이어서 제사가 있고 피가 흐르며 속죄일이 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레위기는 인간에게 “잘해 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너는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 너에게는 중보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듯하다.


그때 레위기의 무게는 정죄의 무게가 아니라 은혜를 갈망하게 만드는 무게로 다가오고, 수많은 규례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리고 그 한계의 끝에서 레위기는 말없이 완전한 제사와 완전한 중보와 완전한 거룩을 가리키며 “이 모든 것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레위기는 복음의 반대편에 서 있는 책이 아니라 복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가장 깊이 느끼게 하는 책이고,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고 불편한 장면이 많지만 나는 이 책을 덮지 않는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며, 이토록 위험하고 연약한 인간 곁에 끝까지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심이 담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레위기는 무서운 하나님 이야기이기 전에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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