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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자동차 도로 연수 날, 신호등 앞 맨 앞줄에 서 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앞 차를 따라가던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었다. 이제는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출발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빨간 불이 켜지고, 발은 브레이크 위에, 심장은 괜히 더 빨리 뛰었다. 사이드미러 속 뒤차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파란불 되면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혹시 시동 꺼지면 어떡하지?’
‘뒤에서 빵 하면 어쩌지?’
물론 그날 파란불이 켜졌을 때, 나는 무사히 출발했다. 생각보다 평범한 출발이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갔다. 그런데도 그날의 떨림은 오래 남았다.
2026년, 나는 교회 구역장으로 임명되었다. 새롭게 재편된 구역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서로 짐을 져주는 공동체”를 세워가길 소망하며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다가오자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너 개인 시간은 없다.”
“편하게 글 쓰고 여행 다니던 시간은 사치야.”
“아픈 어르신도 많고 초신자도 대부분인데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너 성경도 다 읽지 못했잖아.”
그 목소리들은 교묘하게 나를 위하는 척했지만, 실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내일 아침 목사님께 전화해서 사직하자.”
두 시간 남짓 잠을 잔 뒤 일어나, 문득 권사님이 떠올랐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권사님, 저 지금 두려움이 몰려와요. 목사님께 전화드리기 전에 권사님 말씀을 듣고 싶어요.”
권사님은 흔쾌히 나와 주셨다.
“처음에는 다 그래요. 나도 복음 전하러 다닐 때 많이 울며 기도했어요. 처음부터 용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훈련해 가며 단단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처음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사탄이 장난을 쳐요.”
그 말씀은 충고가 아니라 고백이었다.
이분은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셨고, 아픈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을 꾸준히 돌보셨다. 반찬을 준비해 찾아가고, 기도로 붙들어 주셨다. 나의 부모님도 그분의 전도로 교회에 나오게 되어 세례받고 천국 가셨다. 나는 그 헌신을 봐 왔지만, 큰 고목처럼 보였던 권사님도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일이 많아질까 봐가 아니었다. 맨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떨림은 ‘성장의 문턱’에 서 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운전할 때도 그랬다.
실수할까봐 두려웠고 뒤차가 나를 재촉하지는 않을까 하는 타인의 시선 의식, 처음 맡는 책임감, 즉 내가 움직이면 모두가 나를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앞차를 따라갈 때는 몰랐던 책임이, 맨 앞에 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 신호는 결국 바뀌었고, 나는 출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예배를 드리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신앙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신앙까지 함께 품어야 한다. 그 무게가 나를 떨리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떨림은 도망쳐야 할 신호가 아니라,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초대라는 것을.
권사님의 삶은 내게 보여주었다. 용기는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신호등은 결국 바뀐다.
파란불은 예고 없이 켜진다.
그리고 맨 앞에 선 사람은 결국 출발하게 된다.
여전히 조금 떨리지만, 이번에도 나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