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민수기를 읽고
민수기를 읽으며 나는 이 책이 길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시간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걸어서도 한 달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그 짧은 길이 왜 40년이 되었을까. 민수기는 그 질문에 대해, 지리나 환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통해 대답한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자유를 얻었다.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민수기를 따라 읽다 보면, 몸은 자유 하였으나 마음은 과거 노예의 올무에 묶여있다. 즉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곧바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는 못했다. 스스로 자유인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고 과거로 회기 한다.
조그만 어려움을 만나도 오히려 과거의 구속된 삶을 그리워한다. 광야에서 반복되는 불평과 원망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의 고백처럼 들린다. 물이 없을 때, 먹을 것이 지겨울 때, 길이 험할 때마다 백성은 하나님보다 애굽을 떠올린다. 몸은 애굽을 빠져나왔지만, 마음은 아직 애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민수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정탐꾼 이야기다. 하나님이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눈앞에 두고, 백성은 두려움을 선택한다. 현실은 거대해 보였고, 자신들은 작아 보였다. 그 순간 그들은 약속보다 상황을, 말씀보다 감정을 더 신뢰했다. 그 선택이 바로 광야의 시간이 길어진 이유였다. 하나님이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년은 벌처럼 느껴지지만, 성경은 그것을 단순한 형벌로만 말하지 않는다. 광야는 한 세대가 지나가는 시간이었고, 동시에 한 세대가 만들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불평으로 가득 찼던 세대 대신, 광야에서 태어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운 세대가 준비되기까지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급하게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그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백성을 원하셨다.
민수기를 읽다 보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그렇게 반복해서 실패하는 백성 곁에 하나님은 끝까지 떠나지 않으신다. 구름은 여전히 인도하고, 성막은 진영의 중심에 있고, 먹이시고 보호하신다. 백성의 신실함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광야의 길이 길어진 것은 인간의 불신 때문이었지만, 그 길을 끝까지 동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모세의 모습 역시 민수기의 흐름 속에서 깊이 남는다. 그는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서는 사람이다. 백성의 불평에 지치고, 분노로 실수도 하지만, 그는 늘 하나님 앞에 서서 백성을 대신해 말한다. 민수기는 리더십이란 흔들리지 않는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 자리임을 보여준다.
책을 덮으며 나는 민수기가 과거 이스라엘의 이야기라기보다, 오늘 나 자신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길 위에 있고, 믿음과 두려움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아간다. 길이 막혀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민수기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광야에서 40년이 걸린 이유는 하나님이 길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사람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백성을 바꾸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조금 느리고 자주 흔들리는 우리의 걸음에도 여전히 동행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