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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는 한 사람의 마지막 설교로 시작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다. 그는 가나안 땅을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므리바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다. 인간적으로 보면 안타깝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모세가, 자신의 발은 닿지 못할 땅을 앞에 두고 백성에게 외친다.
“기억하라.”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시 들려주고, 출애굽의 역사를 되새긴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손, 홍해를 가르신 능력,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은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신실하심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신명기는 율법의 재진술이지만, 사실은 은혜의 역사에 대한 기억의 책이다.
모세는 말한다. “너희가 의로워서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그분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공로가 아니라 응답이다.
신명기의 중심에는 이 고백이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광야 40년은 실패의 시간이 아니라 훈련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그 마음을 드러내셨다. 배고픔 속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셨다. 광야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제 모세는 선택을 제시한다.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생명을 택하라.”
놀랍게도 이 선언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백성의 미래를 바라본다. 지도자의 마지막 말은 원망이 아니라 순종이고, 아쉬움이 아니라 당부였다.
신명기를 읽으며 나는 깨닫는다. 신앙은 기억하는 일이다. 출애굽을 잊으면 우상을 만든다. 은혜를 잊으면 교만해진다. 광야의 돌길을 잊으면 가나안의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다. 그래서 모세는 집에 앉았을 때든 길을 갈 때든, 자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한다. 기억은 다음 세대를 살리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말씀은 완전한 순종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을 향한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신다. 율법을 완성하시고, 십자가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선 모세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