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22. 여호수아를 읽고

by 운아당

여호수아를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약속”이라는 단어였다.

여호수아 속에서 오랜 광야 생활 끝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장면은 단순한 정복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진 약속의 성취처럼 느껴졌다. 모세에게, 그리고 그 이전의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이 여호수아 시대에 현실이 되는 과정은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했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이루어지는 약속, 그것이 여호수아 전체를 감싸는 큰 흐름처럼 보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땅을 각 지파에게 나누어 주는 부분이었다.

전쟁의 긴장감이 지나간 뒤,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하는 장면은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누구는 더 크고 비옥한 땅을 받고, 누구는 산지나 경계 지역을 맡았지만, 그 안에는 각 지파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땅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사명처럼 보였다. 하나님이 주신 몫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안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분배의 장면 속에는 인간의 연약함도 함께 드러난다. 요셉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기업이 좁다고 말하며 더 넓은 땅을 요구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네가 큰 민족이면 산지로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한다. 약속의 땅이지만, 손쉽게 주어지는 평지가 아니라 스스로 나무를 베고 길을 내야 하는 산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족속에게 철 병거가 있다며 두려움을 표현한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강한 무기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약속을 믿는다 하면서도 현실의 장벽 앞에서 주저하는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 가운데서도 나에게 가장 새롭게 다가온 것은 도피성 제도였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해 따로 성읍을 두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고대 사회에서 피의 복수가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었을 텐데, 그 속에서도 생명을 보호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의와 자비가 함께 가야 한다는 원리가 이미 그 시대에 제도화되어 있었다는 것이 마음을 울렸다. 공동체의 분노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장치가 먼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법은 단순히 엄격한 규율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피성은 어쩌면 인간의 연약함을 전제한 제도였을 것이다. 우리는 실수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산지를 개척하라는 말씀 앞에서 철 병거를 먼저 떠올리는 연약함도, 실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부족함도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그때 완전한 정죄가 아니라 보호와 판단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실수와 부족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도피성은 먼 옛날의 제도가 아니라 지금도 필요한 은혜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다시 설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삶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여호수아서는 승리와 정복의 이야기로만 읽힐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를 세우는 질서와 자비, 그리고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땅을 나누는 일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의 선언이었다. 그리고 산지를 두려워했던 요셉 자손의 모습은, 약속을 받았음에도 믿음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비추어 주었다. 동시에 도피성은 정의 속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주는 창과 같았다.


여호수아를 덮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어떤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올라가라”고 하실 때 철 병거를 떠올리며 두려움에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정죄보다 보호의 마음을 먼저 품고 있는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동시에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과거의 정복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공동체와 책임, 두려움과 믿음, 그리고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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