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구역이야기
성경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사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어갔으나, 백성은 반복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고, 고통을 당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구원하신다는 내용이다.
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란 뜻이다. 백성을 다스리고 어려움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사사기 속 기드온은 처음부터 대단한 영웅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미디안의 압박 아래에서 몰래 포도주 만드는 틀에 타작하며 숨어 있던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용감한 지도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라고 부르신다. 이 장면은 참 놀랍다. 사람의 눈에는 연약하고 겁 많은 한 사람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쓰임 받을 용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기드온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시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 자신감, 실적을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의 모습만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 안에 숨겨진 가능성과 믿음의 씨앗을 보신다. 기드온은 스스로를 가장 작은 자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이것은 연약함이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바로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여러 번 표징을 구했다. 양털에 이슬이 내리게 해 달라고도 하고, 반대로 양털만 마르게 해 달라고도 했다. 이런 모습은 믿음 없는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본다. 믿음의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고, 확신이 부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담대함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다. 기드온은 머뭇거리면서도 결국 순종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믿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하나님께 이끌린 믿음처럼 느껴진다.
특히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사 수를 줄인다. 이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많은 군사가 있어야 승리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 수를 줄이신다. 결국 삼만 이천명에서 삼백 명만 남기신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 불안한 숫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승리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 주고 싶으셨다. 우리는 종종 많이 가지고 있어야 안심하고, 큰 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드온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숫자의 많음이 아니라 순종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적은 수로도 충분하다.
기드온의 삶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믿음이 큰 사람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부족하고, 망설이고, 자신 없어 하는 사람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기드온은 멀리 있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도 삶 속에서 두려움 앞에 숨고 싶을 때가 많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용사여”라고 부르신다. 그 부르심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변화될 미래를 향한 선언일 것이다.
기드온을 생각하면 결국 믿음이란 내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드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기드온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통해 일하셨다. 이 사실은 오늘도 연약한 우리에게 큰 소망이 된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만 찾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구역장을 맡았을 때도 기드온과 같은 처지였다. 나는 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성경 지식 또한 깊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도를 주야로 하는 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두번 사양했다.
‘내가 이 자리를 맡아도 되는 걸까.’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세울 만큼 준비된 사람일까.’
‘내가 더 잘 알고, 더 잘 믿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때 하나님이 말씀으로 깨닫게 하셨다.
"나는 너를 위해 수십년 기도해왔는데 너는 이제 얼마남지 않은 세월을 나와함께 하지 않겠느냐. 시간이 없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주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사사기 6장~10장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