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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Apr 02. 2022

뭐든 쏘고 싶었어요, 양궁 도전기

내가 장군이 될 상인가




 활이든 총이든 쏴보고 싶다!!!! 는 무지막지한 목표만 하나 있었을 뿐, 지난 취미들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중에 크면 꼭 활이든 총이든 쏘면서 살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얹어서 승마까지 배우면 완벽할 것 같았을 뿐이다. 이 야무진 포부를 들은 친구는 너.. 무슨 장군님이 꿈이야?라고 했지만.


 또 그렇다고 양궁이나 사격 경기를 챙겨 본다거나 총이나 활의 종류를 좔좔 외우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활, 총이 좋다기보다는 정확하게는 내가 뭐가 됐든 쏘는 행위를 그 손맛을 경험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취미 선택의 기준으로 접근성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었다. 20년 전쯤만 해도 양궁이나 국궁, 사격은 접근성이 제로에 수렴했다. 우연히 국궁을 먼저 체험해 봤는데 이건 내 조건으로 꾸준히 시도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했다. 왜냐면 그 당시 국궁장은 거의 실외였고 나는 햇볕 알레르기가 있어 햇빛과 친해질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을 잊고 지내다가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을 보게 되었다. (자꾸 봉 감독님 영화 얘기가 나오는데 그만큼 나한테는 영향이 커서 어쩔 수 없다ㅎㅎ) 주인공 가족 막내 여동생으로 나오는 남주(배두나 역)가 바로 양궁 선수로 나온다. 와 씨! 이거지! 내가 이걸 잠시 잊고 있었네!! 하면서 검색을 했다. 하지만 요즘 같을 때야 양궁 카페나 체험이 진짜 많아졌지만 06년도쯤엔 학생 선수단이나 엘리트 체육 느낌이라 당시 내 상황에서는 취미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지하철 역에서 학교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새로 건물이 하나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본 그 건물 꼭대기에 적힌 글자.

양궁 아카데미  

 오.. XX... 너무 좋아서 욕이 나왔다. 세상에 출퇴근길에 떡하니 양궁 학원이 생긴 것이었다. 아직 건물이 제대로 다 올라온 상태도 아닌데 전화번호 부랴부랴 눌러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박종숙 코치님이 운영하시는 학원 겸 체험 카페였다. (현재는 위치를 옮겨 운영 중이시니 혹시 궁금하면 링크 클릭) 1호 등록생으로 당당하게 학원비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했다. 드디어 내가 활을 쏘는구나!!!!!




 양궁은 특히나 나에게 강렬한 경험도 주었고 나에 대해서나 내 직업과 관련된 자세에 있어서나 큰 배움이 따랐던 취미다. 일단 초심자의 행운이 잘 통했고 나와 맞는 운동을 만났다. (그래, 이래서 나도 모르게 당겼나 보다...) 그리고 양궁도 실외 운동이라 경기를 다양하게 나가기는 어렵겠지만 나중에 연습만 잘하면 실내 위주인 대회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신나서 찍어 놓은 첫날 스코어



 코치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여자 리커브 국가대표, 前 인천시청 양궁 코치셨고 생활 체육으로 양궁을 다양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이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쳐 본 노하우로 같은 시간대에 레슨을 받던 성인 여자인 나를 비롯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까지 빈틈없이 성심성의껏 레슨을 해주셨다.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해 주시던 것들이 나에게도 적용이 되어서 칭찬도 응원도 항상 넘치게 주셨다. 자꾸 활시위를 당기면 화살을 툭툭 떨궈서 내가 놓쳤나 보다 했었는데 내가 팔이 길어서 남자용이나 외국인용 화살을 써야 한다며 나도 잘 몰랐던 나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특히나 코치님이 개구쟁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많이 배웠다. 분명히 약이 올라 화가 나거나 의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어도 침착하셨다. 특히나 화살을 쏘는 공간은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그게 힘드니 엄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다. 이것이 뛰어난 체력과 깊은 정신력에서 나오는 운동인의 여유인가! 생각하며 닮아가길 바랐던 것 같다.  



주로 사용하던 활이랑 너덜너덜한 과녁

 


 아쉽지만 학교 일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양궁을 쉬게 되었다.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좀 나아지면 다시 다녀야지 하면서 다시 올게요 양해를 구했다. 근데 다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쉬는 기간이 길어지니 관심이 살짝 떨어지던 차에 코치님께서 아마추어 대회가 하나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주셨다. 나의 꼬임에 넘어가서 꾸준히 하고 있던 동료 선생님이랑 같이 대회에 참여했다. 결과는...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백분율이었던 것 같다. 26명 중 20등!! 하위 80%!! 그래도 내 인생에서 양궁 대회를 언제 나가보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결과는 대수롭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고 행복했다.




 대회 직후에 다시 시작을 해보려다가 연구학교에 출판 준비까지 겹쳤다. 또 얼떨결에 다른 취미를 시작함+코로나19로 5년 정도 쭈욱 밀려버렸다. 흠... 뭘 또 해볼까 하다가 양궁 맛을 한 번 살짝 봤으니 실탄 사격으로 옮겨 타보자 싶어 작년 가을쯤 남대문 실탄 사격장에 놀러 갔다 왔다. 비비탄이나 레이저 총은 오락실 갈 때마다 쏘고 놀았지만 실탄 사격은 처음이었다. 안전 지도받고 쏘는데 사진 찍고 동영상으로 찍고 오만 난리를 다 피우며 진짜 진짜 너어어어어어무 신나게 쐈다.  

살짝 아쉬운 내 첫 실탄 사격 점수


 그렇게 총맛을 보고 목동 사격장 개인 레슨을 알아보게 되었다. 평일 오전 레슨이 제일 좋은데 학교를 관두지 않고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았고 하필 그 시기에 건강에 이상이 왔다. 개인적인 것이라 다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사격을 시작하긴 어려운 컨디션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난 오늘도 다짐한다. 수술하고 회복하자마자 바로 총 쏘는 나로 다시 태어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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