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오 Mar 29. 2022

민요 도전기

사랑가 탐구



 중학교 때 사물놀이부였다. 원래 가야금을 배우고 싶었는데 집 주변에 국악기를 따로 가르쳐주는 곳을 찾지 못하던 차에 CA시간에 사물놀이가 있어서 덜컥 들어갔던 것 같다. 1학년 때는 징 치고 장구치고 2학년 때부터 바로 상쇠로 레벨업 해가지고 아침 조회 시간, 학교 축제, 동네 공원 행사 등 재미있게 활동했다. 그 이후에는 국악 공연 좀 챙겨보러 다니거나 교대 다닐 때에는 국악 교육 공부도 해야 하니 전통 음악 이론을 비롯해서 민요랑 전래동요 외우고 장단도 배웠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애들 앞에서 장구채 몇 번 잡아보고 꽹과리 기술 좀 자랑하면서 언젠간 줄을 뜯든 입으로 부르든 국악을 더 해보리라 생각했었다.


 역시 언젠간... 은 쉽게 오지 않았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 시작도 못해볼 것 같아서 취미 공백기가 생기자마자 바로 숨고 어플을 깔았다. 모든 조건이 아주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선생님은 국악밴드 우리음에서 보컬로 활동하며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남도민요 전공자다.  


 첫 곡으로 택한 것은 춘향전의 '사랑가'였다. 딱 제목 보자마자 튀어나오는 그 노래 맞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그거. 우리가 아는 사랑가는 진짜 일부였고 가만 보니 뒤에 뭐가 줄줄이 더 달려있었다. 수박 먹을래? 씨도 발라주까? 앵도? 포도 줄까? 하며 이도령이 춘향이를 꼬시는 말들. 아니 싫다, 나는 그것도 싫다 하며 춘향이가 밀당하는 소리가 반복된다. 이도령은 춘향이더러 워킹도 시킨다. 이리 와라 저리 가라 걷는 태를 보자 어쩌고. 급기야는 방긋 웃어라 입 속을 보자고 청하기까지 한다. 그냥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가사를 곱씹으며 불러보니 굉장히 너네.. 모해...? 싶은 노래였다.




 사실 노래만 재미있었지 부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목이 아픈 게 아니고 너무 못 불러서 귀가 괴로웠기 때문이다. 많이 주워듣고 다녔으니 듣는 귀는 하늘 가까이에 달려있는데 정작 나한테서 나는 소리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대체로 첫날부터 처음 하는 거 맞냐는 이야기를 듣는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는 사람인데 민요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민요를 배우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고 아주 굵은 목소리로 누르듯이 내야 하는데 그게 아예 안됐다는 소심한 핑계를 대보고 싶다.


  또 힘들었던 것은 내가 너무 뻣뻣하단 거였다. 그때여 춘향이와 이도령이 사랑가로 노난디~ 하면서 아니리로 외치듯이 시작하는데 노래가 아닌 부분이 정말 어색했다. 정말 몸과 마음이 전반적으로 다 굳어 있는 사람 같으니라고. 장단이랑 밀당도 좀 해보고 춘향이 이도령 늬들 사귀냫ㅎㅎㅎ 하는 내용도 약간 능청도 떨어가면서 했어야 하는 건데 수업 녹음한 거 다시 들어보면 목석도 이런 노잼 목석이 따로 없었다.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참 감사했던 것은 선생님이 정말 좋으셨단 거다. 성악 레슨 때처럼 선생님이 선창하고 내가 따라 부르는 식이었는데 그 멋진 소리를 실음 라이브로 들으며 호사를 누렸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발성과 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잘 달래 가며 성의껏 가르쳐주셔서 참 고마움을 느꼈다. 민요는 정말 아쉽게도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초반, 학교 출퇴근도 극도로 조심하던 시기라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그만두게 되었다.




 성악-보컬-민요까지 거치면서 나의 소소한 취미 생활을 아는 사람들은 그거 뭐 하는 건데, 뭐 어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나갈 거냐 물어보곤 했다. 내 목표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 출연도 아니고 송가인 씨도 아니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것', '그냥 해보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모두 만족이다. 내가 모르던 나를 알게 되었고 내가 가진 장점과 버려야 하지만 버리기 힘든 단점도 알게 되었다. 굳이 얻은 건 뭘까 생각해 본다면... 우리 이모 칠순잔치 때 애국가를 저 세 가지 창법으로 달리 불러줄 수 있는 거 정도일까?


 다음 목표는 샹송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컬 트레이닝 도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