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후반쯤 친구들 PC방 다닐 때 난 노래방을 열심히 다녔다. 용돈에는 한계가 있으니 더 싼 곳을 찾아서 버스 타고 40분을 마다하지 않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우리 동네 노래방이 한 시간에 6천 원일 때 인천 신포시장 부근 노래방은 낮에 방문하면 3~4천 원도 가능했었다. 잘 부르고 싶어서 즐겨 다닌 건 아니고 그냥 마음 놓고 크게 소리를 낼 수 있고 일탈을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데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20대 넘어서는 놀만한 거리가 훨씬 많아져서 그랬는지 이전만큼 많이 안 다니게 됐다. 즐겨 부르던 노래 예약 번호도 다 까먹고 즐겨 다니던 노래방들도 점점 없어지고 노래방 이용 가격은 한 시간에 12000원이 넘어가버렸다. 그 이후로는 누가 가자고 하면 그냥 같이 가거나 아주 가끔 당길 때만 다녔다. 마치 평생 다닐 노래방을 10대 때 다 다녀버려 노래가 지긋지긋해진 사람처럼.
그러다가 혼자 피아노 뚱땅거리면서 부르는 거 말고 보컬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악으로 놀란 가슴 조금이나마 익숙한 가요를 배우면 자존감이 좀 올라갈까 싶은 간사한 마음이었을까. 동네 보컬 레슨 학원을 수소문해서 응대가 친절한 쪽을 골라 등록부터 해버렸다. 이번엔 여자 선생님한테 배워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는 선생님이 남자분이라 수긍하고 그냥 배우기 시작했다.
성악 레슨과 보컬 트레이닝은 소리의 결과물이 다를 뿐 기본적으로 소리를 내는 원리 같은 게 꽤나 비슷했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설명 방식이 좀 달라서 그게 그거였구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성악할 때에는 목구멍을 열라고 하셨는데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은 혀를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처음엔 혀.. 를.. 어떻게 내려놓지?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게 마음만이 아니었나? 이러면서 좀 헤매긴 했는데 표현만 다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둘 다 비슷한 이야기였다. 성악할 때 머리 꼭대기에서 소리가 퍼지듯이 해봐라 했던 게 보컬에서는 머리가 울리는 걸 느껴봐야 한다랑 같은 의미였다.
이렇게 성악과 보컬 트레이닝이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인지 내가 가진 장점과 극복하기 어려웠던 단점들을 그대로 또 만나게 되었다. 악보도 잘 보고 박자, 음정도 괜찮고 음역대가 넓은 편인 것이 나의 좋은 점이었다면 결국 소리에 힘이 없어서 이런 좋은 점들이 묻혀 버린다고 하셨다. 몸을 폴더폰처럼 반으로 접어 머리 감는 자세를 만들어 강제로 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비기도 전수해주셨다. 어쩐지 샤워할 때 노래가 잘 되는 것 같더라니.
그렇게 재밌게 배우다가 어느 날 선생님이 내 노래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해주셨다.
"정오씨 노래는 많이 나아졌는데.. 사실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감정이요?"
"네, 지금 정오씨가 따라 부르는 보컬들이 유명한 이유는 노래 스킬이 좋아서도 있지만 특유의 감정들이 분명히 느껴지거든요. 근데 정오씨는 노래는 아무 느낌이 없이 부르기만 하는 것 같아요."
준비물이 분명히 있는데요...
매우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못 부른다고 하는 건 내 귀로도 들리는 사실이고 노래 자체에 대한 평가니까 감수하겠는데 감정이 안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보완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원래 눈물도 흔하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도 한 번 울었음) 웃음도 화도 넘쳐서 매일 감정이 널을 뛰는데 이게 노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니. 그냥 잘 못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심지어 선생님은 우스갯소리였겠지만 지금 남자친구는 없나, 그간 아팠던 사랑은 없느냐, 짝사랑해본 적 없느냐 등 마음이 더 깊어질 만한 일들이 많이 생겨야겠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나보다 어린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이런 조언을 해주는 거지? 지금 내가 살짝 짜증 났으니 주먹을 살짝 쥐고ㅋㅋㅋ 부르면 감정이 전해지려나? 하는 약간의 반발심도 생겼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되는 바람에 도저히 노래를 계속 부를 만한 마음이 들지 않아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당황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문예 창작과에 다닐 때에도 내 글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글을 못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교대 다닐 때 내게 동화를 써보는 것은 어떤지 권유해주셨던 교수님께서도 정작 크게 칭찬해주셨던 것은 시나 동화가 아닌 문학 비평이었다. 나의 오만가지 감정들과 따뜻하고 온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마음들이 글과 노래에 묻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찾지 못했다. 스킬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덮어두기엔 남의 마음을 쥐고 흔들만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이렇게 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로 시작해서 글로 끝나는 이 글도 무지 뻣뻣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점을 나로 하면 더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