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당시 한예종 전문사 과정을 밟고 있던 카운터테너였다. (클릭하면 선생님 너목보 출연 영상 나옴)
카운터테너는 소프라노 음역대를 노래하는 남자 성악가를 말한다. 평소 대화하는 목소리는 편안하고 적당한 볼륨에 듣기 좋은 소리지만 노래가 시작되면 정말 달라진다. 실제로 무대를 본 사람들은 립싱크인지 의심도 하고 남자가 맞는가 궁금해하기도 한다고. 공간을 밀도 있게 꽉 채워버리면서도 엄청나게 높은 음역대를 아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노래했다. 물론 레슨은 선생님 소리를 감상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 소리를 내러 간 시간이기 때문에 마냥 감탄만 할 수 없었다.
근데 성악,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내 몸에서 나는 소리는 아주 형편이 없었다. 깔짝이며 흉내 낸 것과는 완전 차원이 달랐다. 듣기에 쉬운 소리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성악을 배우면서 노래도 배웠지만 나는 나에 대해서 새롭게 하나씩 알게 되었다.
나는 의외로(?) 무척 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잘못된 발성으로 목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이해력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고 소화하는데 애를 먹었다. 왜냐면 소리를 내는 방법은 꽤나 추상적 혹은 주관적이어서 설명 자체가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동그란 구의 모양으로 만든다고 상상을 해봐라-> 상상은 내 특기인데 상상이 안됨
머리 꼭대기에서 소리가 퍼진다고 생각해봐라 ->... 와이파이?
목구멍을 연다고 생각해봐라-> 목구멍은 입을 열면 같이 원래 열리는 것이 아닌지...?
내야 하는 음이 높아져도 소리를 내는 곳이 높아지면 안 된다 -> 제 소리가 높아지긴 했나요?
열등생 체험하기에 성악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 레슨을 받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살면서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별별 무대를 다 구경하러 신나게 돈을 쓰며 다녔지만 이 레슨 시간과 견줄 수 없다. 그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고 나를 가르쳐주기 위해 전문가가 최대한의 노력을 제공하는 시간이다. 기술과 재능이 넘치는 전문가가 기꺼이 내어주는 소리에 레슨 시간마다 흐물흐물 잠식당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 즐거운 경험에도 잠시 위기가 찾아온 적도 있다. 레슨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무렵에 선생님이 비전공자도 도전이 가능한 전국 규모 콩쿠르에 나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유하셨기 때문이다. 잘해서라기 보다는 어떤 이유로든 일단 배웠으면 무대를 목표로 도전을 해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싫다고 징징거리며 거절해서 콩쿠르 신세는 면했지만 몇 번 동료 성악가 분을 레슨 장소에 데리고 와서 내가 배우고 부르는 걸 다 보고 듣게 하셨다. 힝... 나는 노래방도 단체로는 잘 안 가는 사람인데... 내 노래를 제삼자가 듣는다니 도망가고 싶었지만 무대를 간접 체험하게 해 주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상태는 현재 페르마타, 잠시 멈춤.
선생님이 유학 겸 이민을 가게 되면서 나의 성악 레슨 시즌 1이 끝이 났다. 그 이후에 다른 것들을 배우느라 한 7년 정도 쉬고 있지만 언젠가 또 좋은 선생님을 만나 시즌 2를 시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