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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Mar 24. 2022

성악 도전기(1)

나를 스쳐간 취미 되새김질하기


 고등학교 때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이태리 가곡을 가창 시험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번안 가사도 아니고 실제 이탈리아어 발음 그대로 부르는 시험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한글로 악보 위에 원음과 가까운 발음을 빼곡하게 적어 넣었다. 내 몸에서 나는 소리가 신기하고 잘 불러보고 싶은 마음도 앞섰다. 가창 시험을 잘 마친 이후로도 여운이 남아 제대로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음악 선생님께 살짝 여쭤봤더니 '흥미가 생겼다면 레슨을 받아보고 괜찮으면 전공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권유로 답이 돌아왔다. 


 미처 영글지 못한 머릿속에서 잠시 계산기가 돌아갔다. 당시 동생이 이미 피아노 전공을 목표로 레슨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우리 집 형편에 과한 욕심이었다. 나를 더욱 망설이게 만든 것은 꽤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상, 그것이 문제였다.


1.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다.

2. 나에게 허락된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만이 소리 낼 자격을 갖는다.

3. 청중들은 나만 보고 그 앞에서 노래를 한다.


 사람들 앞에서 차라리 말을 하라면 할 수 있겠는데 노래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기절할 것 같았다. 나작은 심장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또 대학을 어떻게든 가고자 한다면 갈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삶을 노래로 장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예체능은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타고난 면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나는 이걸 해보고는 싶지만 전공으로 선택하기엔 용기가 없는 상태였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호기심을 과감하게 접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대학도 두 번 가는 와중에도 미련이 남아서 가곡이나 유명곡들을 흉내 내며 소심하게 질척거렸다. 심지어 두 번째 다니던 학교는 학생이 원하면 레슨비를 따로 지불하고 음악과 성악 교수님께 레슨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도 있었지만 그냥 가창 수업을 듣는 정도로만 만족했다. 음악관이 언덕에... 언덕에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한 번 해보는 건데 그게 그냥 귀찮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아도는 시기가 왔고 마음에 여유도 생겨 이럴 때 못해본 거를 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피아노 반주자인 동생을 통해 성악 전공하는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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