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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Mar 30. 2022

이제는 그림이다, 민화 도전기(1)

복숭아랑 고양이를 그리고 싶었을 뿐인데


 음-미-체 중에 미술을 이야기해볼 차례다. 사실 취미 타임라인으로는 민화가 먼저인데 비슷한 종류를 몰아서 쓰다 보니 순서가 살짝 바뀌었다. 원래 한국화를 먼저 접했다. 첫 대학이 예술대학에 속해 있었는데 바로 옆 과가 미술학부였다. 거기는 한국화랑 불교미술 전공도 있어서 오며 가며 아 이런 게 있구나 인식이 됐던 것 같다.

 그 이후 학교를 옮기고 나서 미술교육 과목으로 한국화를 만나게 된다. 한국화를 사랑하는 한국화 전문가셨던 교수님을 통해 한국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도 먹으로 선을 어찌어찌 그리고 채색을 하면 뭔가 그럴싸한 그림이 나오니 신이 났었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며 교수님의 낙관이 찍힌 부채를 차지한 유일한 1인이 되면서 기분 좋게 이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한 학기 수업만으론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었지만 이 역시 '언젠간' 꼭 다시 제대로 배워봐야지 결심하게 되었던 계기가 됐다. 



 아무리 마음이 땡겨도 내 취미 시작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접근성이다. 멀리 나가야 한다? 웬만해서는 포기한다. 취미 생활은 헬스장 다니는 것과 같아서 너무 멀거나 주로 다니는 동선에서 떨어져 있으면 나의 열정이 바로 식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십 몇 년 전만 해도 한국화는 시작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접근성이 좀 떨어졌었다. 그래서 시작을 못하고 몇 해가 흐르다가 우연히 고양이 민화를 보게 되었다. 그 고양이를 보자마자 호오~ 민화도 한국화려니 하며 바로 민화를 가르쳐주는 곳을 수소문했다. 화실이나 개인 레슨은 아니었고 문화 센터 같은 곳이었다. 퇴근길에 있어서 중간에 샐 일이 줄어들 것 같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지 잘한 선택이었다. 


 첫 작품은 부채에 연꽃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미 초(밑그림)까지 다 떠진 기성품으로 붓과 물감 맛을 본다. 음~ 그땐 맛있었지. 지금 다시 그 첫 작품을 보면 우리 반 9살짜리가 색칠 공부한 것 같이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작품에 들어가서는 호랑이랑 까치, 소나무를 그렸다. 


 가만 보면 민화는 특히 나 같이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좋은 활동이다. 기존에 그려진 그림들을 모작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그림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 굉장히 강렬한 편이라 몇 번 선만 그은 건데도 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면히 뜯어보면 바림 (서양화의 그러데이션과 비슷)도 먹선도 모두 엉망이다. 그래도 내 첫 작품이라 그런지 호랑이 눈동자가 희번덕하고 까치 눈알도 약간 돌아 있어서 그런지 참 마음에 든다.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께 민화 배우기의 최종 목표가 고양이랑 복숭아를 그리기라고 말씀드린 게 있었기 때문에 호랑이를 그렸으니 이제 고양이 그리는 거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다른 제안을 해주셨다. 어차피 고양이까지 그리기를 하려면 밟아야 하는 코스가 더 있는데 그 코스가 민화 지도 자격증을 따는 것과 똑같으니 이왕 그리는 거니까 그리면서 자격증도 따라는 조언이었다. 소질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선생님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두 번째 작품은 초충도였다. 이 그림은 참고 작품을 볼 때부터 마음이 뭔가 정갈해지고 약간 머리를 쪽져야 할 것 같고 옷고름을 점검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렬한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뒤는 배경처럼 은은한 꽃과 풀이 자리한다. 맨드라미, 나비, 쇠똥구리, 이름 모를 풀들 중에 나는 쇠똥구리가 제일 맘에 든다. 쇠똥구리는 색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고 그림 속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설명을 보면서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그림들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들을 대체로 애매하게 찍힌 눈동자나 쇠똥구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짜 그랬다. 나의 취향이 서서히 어떻게 바뀌고 그림을 더해가면서 무엇을 느꼈으며 정말 자격증을 따게 되었나에 대해서는 2부에서 이야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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