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국민이 식당 앞에서 휴대폰의 QR코드를 점원에게 내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전자출입명부에 QR코드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자출입명부는 옛날 일이 되었지만 QR코드는 여전히 다양한 곳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QR코드는 2차원 매트릭스 형태로 이루어진 일종의 바코드로서, 1994년 일본의 덴소 웨이브라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개발하였습니다. 덴소 웨이브는 QR코드와 관련된 여러 건의 특허를 등록하였지만, QR코드의 표준을 그대로 따르는 조건으로 QR코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특허 자체도 모두 만료되어 QR코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사실 2차원 코드는 QR코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QR코드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2차원 코드들이 개발되었습니다. 2차원 코드와 관련된 특허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도 “two dimensional code”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수백 건의 등록특허가 나옵니다. 이중에는 QR코드의 개발사인 덴소 웨이브에서 등록한 것들도 있습니다. 특허문헌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QR코드에 비해 더 나은 가독성, 빠른 스캔 성능, 높은 보안성 등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덴소 웨이브의 미국등록특허 US 10,909,432 B2
그렇다면 이런 좋은 기술들이 많은데 왜 여전히 시장에는 QR코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QR코드는 무료이고, QR코드 이상의 것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QR코드는 주로 웹페이지의 주소나 일련번호 등 간단한 텍스트 전달에 사용되다보니 특허에서 자랑하는 더 높은 성능이나 화려한 기능이 필요한 경우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특허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라이선싱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굳이 이를 도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단지 다른 기술보다 우수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채택되는 것은 아닙니다. QR코드의 사례에서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안기술이 존재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특허청에 등록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2차원 코드 관련 특허들의 가치는 사실상 제로(0)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간단하고 별 것 없어 보이는 특허라도 시장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면 엄청난 가치를 가진 특허가 될 수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아오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인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기술이든 간단한 기술이든 상관없이 돈을 잘 벌어오는 특허가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특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