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이 가로막은 무게

벤치프레스의 심리적 무게

by 박보라

웜업은 친업으로 가뿐하게. 시작이 좋았다. 쓸떼없는 생각으로 잠을 설친 탓에 머리가 좀 멍하긴 했지만, 운동하기에는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그렇게 오늘 벤치프레스 50kg에 처음 도전했다. 내 몸무게 55kg에 거의 근접한 무게다. 45kg 두 개까지 들어봤으니 5kg만 올려서 하나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오늘도 또 기록을 갱신하겠군, 자신만만했고 설렜다. 하지만 랙에서 바벨을 뽑는 순간 계산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팔을 타고 전해지는 무게는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바벨을 가슴 쪽으로 내리기도 전에 어깨가 뒤로 밀리는 감각이 들었다. '지금 바로 다친다'란 생각이 바벨처럼 빠르게 내려왔다.


옆에서 피티 선생님이 "제가 있으니 괜찮아요"라고 말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서움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압도했다. 바벨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랐고, 내 힘으론 그 속도를 제어할 수 없을게 뻔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무겁게 내려왔다.


스쿼트는 중심을 잃으면 주저앉거나 바를 뒤로 던지면 그만이지만, 이건 탈출구가 없다. 무게가 목이나 가슴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생생했다. 바벨이 떨어지기 전에 어깨가 먼저 뒤집혀 다칠 것 같았다. 아니, 바벨을 잡는 순간에 이미 어깨가 꺾이는 아픔이 상상됐다. 어깨가 꺾이고 가슴이 짓눌리겠지. 결국 보조 없이는 단 한 개도 스스로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했다.


평소 나는 운동 자세가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다른 중량으로 운동할 때는 습득력이 빠르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처음 경험한 무거움 앞에서 과거의 칭찬은 방패가 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무거움을 맞이하니 어깨 패킹이고 나발이고 신경쓸 수가 없었다. 큰일났다는 생각에 팔만 계속 떨렸다.


문득 작년 6월의 벤치프레스 수업이 떠올랐다. 2024년 6월 6일 현충일 오후 5시 수업이었다. 그때 피티 선생님이 바벨 벤치프레스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바 위에 얹는 썸리스 그립을 시켰다. 마침 그 전 날, 벤치프레스에서 썸리스 그립이 사망사고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그 그립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글을 읽은 터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불안한 상태로 한 세트를 끝냈는데, 선생님이 썸리스 그립 상태로 무게를 더 올려보자했을 땐 그 눈을 말똥말똥 쳐다봤었다. 진심이신가요. 하지만 '무서운데요' 말하진 않았다. 아, 이거 손 미끄러지면 큰 일인데. 선생님은 자세를 보느라 멀찍이 서 있었다. 선생님 제발 제 가까이 있어주세요, 말하고 싶었지만 체면을 챙기고 무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날 피티 레슨 끝나고 헬스장 건물을 나서자, 눈물이 났다. 눈물이 그치지 않아 근처 단골 카페에 갔는데, 몇 분간은 울었던 것 같다. 카페 냅킨으로 눈물을 훔치는 나를 살펴본 사장님이 레몬 케이크를 하나 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굳이 울 일이었나 싶긴 한데, 아무튼 그날은 울었다. 오늘 느낀 감정도 그때와 비슷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운동을 마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날카로운 무게감이 여전히 손 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인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두통도 시작됐다. 45kg과 50kg 사이. 거기엔 고작 원판 몇 개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제어할 수 있다 생각한 내 근력과, 제어할 수 없는 실제의 무게 사이엔 거대한 간격이 있었다.


오늘은 결국 실패했다. 무게를 실패한 게 아니라, 정신을 다 잡는데 실패했다. 무섭다고 집중력을 잃었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고, 겁을 먹고 힘을 놓아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이틀 정도 지나고 그 무게, 다시 들어보려고 한다. 내 힘이 약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겁쟁이라 못 든 건지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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