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 3개 첫 성공
영하 11도, 기어이 또 걸어서 아침부터 헬스장엘 갔다.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오셨네요, 다정한 매니저님의 애정 어린 인사를 받고 워밍업 시작. 딥스(Dips)는 지난달부터 목표로 한 가슴 운동이다. 누군가에겐 가벼운 워밍업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하나 성공하기도 힘들었다. 상체를 숙이고 내 몸의 무게를 두 팔에 싣고 내려갔다 올라오는 동작. 말 그대로 내 질량을 정직하게 감당해야 하는 시험대 같은.
작년 12월, PT를 잠시 쉬기로 했을 때 목표로 삼은 것이 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올라갔다 내려와 보겠다고. 내 가슴 운동은 늘 반쪽짜리였다. 벤치 프레스 중량은 조금 늘었고, 디클라인 푸시업도 이젠 거뜬히 해냈지만 딥스 바 앞에만 서면 겁이 났다. 내려갔다가 못 올라올까 봐, 무리하다가 어깨를 다칠까 봐. 한 번 내려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12월엔 혼자 외롭게 매달렸다. 남들이 보면 뭐 하나 싶을 정도의 가동 범위를 늘리기 위해 가슴 운동을 하는 날마다 매달렸다. 12월 중순에 1개, 연말에 2개까지 성공했다가 해를 넘긴 1월 중순이 되어 드디어 오늘, 3개까지 성공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한 성공이라 조금 몸이 흔들리긴 했지만 3개째에 완전히 올라온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발바닥을 지면에 안착하는 순간 속으로 웃었다. 와, 해냈다 하면서.
그런데 이상했다. 기쁨이 앉아야 할 자리에 별 감정이 없었다. 기뻐야 할 일이 아닌가, 의아했다. 이 이상한 기분을 파헤치려 피티 선생님께도 딥스 성공 소식을 공유했다. 선생님은 (당연히) 좋아했고, 함께 기뻐해주었다. 평소라면 그 멘트에 어깨가 으쓱했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 메시지조차 전혀 재미있질 않았다. 그 기쁨이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그냥 폰 안에서 흩어졌다. 그때, 스스로 묻게 됐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요즘 내 일상은 운동이란 궤도에 무섭게 쏠려있다. 일상의 정글 속에서 나는 매 순간 다중인격자가 된다. 아이들에겐 따뜻한 친구이자 선생님, 학부모님께는 무한한 신뢰를 주는 멘토. 혼자 있을 땐 차가운 염세주의자.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퇴근길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아마 이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나는 요즘 자꾸 헬스장을 들락거리는 것 같다. 정확히는 숨어든다고 해야 할까. 여기엔 복잡한 인간 관계도, 풀리지 않는 난제도 없다. 그냥 내 힘닿는 데까지 뭔가를 하면 된다. 현실은 여전히 단단하고 높은 벽인데, 이 작은 동굴 안에서 고작 딥스 3개를 성공했다고 좋아해도 되는 걸까. 딥스 바 위로 몸을 밀어 올린 높이만큼, 해결해야 할 현실로부터 더 멀리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바랐던 건 딥스 성공이 아니라, 그 성공을 위해 보내는 시간 속에서 뭔가 얻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해답이라던지, 아니면 즐거움이라던지. 하지만 딥스는 그저 딥스일 뿐이었다. 3개를 하든, 10개를 하든. 헬스장 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마주할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피티 선생님의 박수가 공허했던 건 내가 채우고픈 것이 근육의 크기나 운동 횟수로는 이제 채우기 힘든 것이어서 그랬던 걸까.
그래도 나는 다음 주 'Chest Day'에 다시 딥스 바 앞에 서겠지. 딥스 3개가 기쁘지 않았던 건, 그건 이제 요행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내 실력의 영역으로 들어왔단 증거이기도 하니까. 성취가 무덤덤해졌다는 것은 그 무게를 견디고 이겨내는 일상이 당연한 일이 되었단 얘기일 테다.
그리고 현실 도피면 좀 어떤가. 헬스장에서 기른 이 작은 팔 근육이, 내일 아침 가면을 주워 쓰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기쁨 없는 성취도 괜찮다. 이 담담한 반복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현실의 무게도 묵묵히 밀어 올릴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의 칭찬 없이도 혼자 조용히 기뻐할 수 있게 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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