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이 나를 지탱한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앞모습이다. 다정한 표정과 따뜻한 눈빛, 어쩌면 잘 가꿔진 복근이나 매끈한 피부. 우리는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해 피부를 관리하고, 표정을 연습하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앞모습은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창문일 수도, 사랑받고자 하는 나의 욕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사람을 떠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등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끝을 맺을 때 '등을 돌린다'는 표현을 쓴다. 마주 보던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을 향해 몸을 틀어 낸다. 나의 표정, 눈빛, 가꿔온 그 어떤 모습도 상대에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그 의지는 등에 실린다. 그 떠남은 등의 모습에 따라 미련 섞인 망설임인지, 아니면 단단한 작별인지 판단될 거다. 그러고 보면 등은 떠남의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부위이자, 떠남과 동시에 홀로 남겨질 자신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지 않을까.
오늘은 등 운동을 했다. 트레이너의 지도에 따라 상부, 중부, 하부로 나누어 바를 당겼다. 문득 내 등 근육을 살피니, 하부는 제법 발달했지만 상부와 중간 쪽은 그에 비해 턱없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부 승모근과 광배근이 아래에서 묵묵히 무게를 지탱하는 생존의 영역이라면, 상부와 중부 승모근은 견갑골을 가운데로 모아 가슴을 펴고 등을 단단한 벽처럼 만드는 긍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마음도 이와 닮아 있었는지 모른다. 춥고 길었던 지난 2년, 나는 아래에서 묵묵히 버티는 하부의 힘으로 나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사람을 등지고 돌아설 때 필요한 상부와 중부의 힘, 즉 견갑을 꽉 조여 마음의 문을 닫고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은 부족했다. 상·중부 등 근육이 약하면 등은 굽고 뒷모습은 약해 보인다. 내가 상황에 등을 돌리면서도 자꾸만 어깨가 안으로 말려 들어갔던 건, 내 마음의 중상부 근육이 아직 상황을 밀어낼 만큼 단단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는 등 운동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단순히 무게를 아래로 당기는 것을 넘어, 견갑을 서로 맞닿게 모아 등의 중상부를 꽉 채우는 연습을 해보기로. 이곳이 단단해지면, 다정한 내 앞모습을 애써 세상에 보여주지 않아도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을까.
나를 삶의 바닥으로 이끌었던 사람에겐 더 이상 표정을 선물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것을 뒤로 남겨두고 돌아선 등엔 내 의지를 담을 수 있겠지. 덜 발달했던 나의 상부와 중부 등이 꼿꼿하게 차오를 때, 나의 정서적 독립은 비로소 완성될거다. 등을 돌린다는 건 단순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단단하게 채워진 온전한 나로 복귀하는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