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은 독기는 독이 된다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예전 수업들은 좀 강도가 낮았어요. 근육통도 거의 없었어요."
굳이 그런 말은 하지 말 걸.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40일 만에 마주한 낯선 공기에 위축되지 않으려는 오기같은 거였나.
그날 체육관엔 어떤 음악이 흘렀는지,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운동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강도가 낮았다는 말에 집중한 자. 그리고 내뱉은 말에 지지 않으려는 내가 겉으론 반갑다, 미소지으며 약간의 기싸움을 벌였던 것 같다. 원래 이 운동에서 이정도의 플레이트를 꽂았었나, 의아했다. 심지어 내가 유난히 힘들어했던 브이스쿼트에서. 어라, 이렇게 나오시겠다? 생각하며 중량, 자세, 횟수, 이 모든 걸 다 해내겠다는 내 집중력은 근래 운동중 최고였다. 어떤 지적도 허용하지 않겠단 나의 의지. 나는 약하지 않다, 나는 혼자서도 이렇게 성장하는 사람이다를 증명하려 애썼다. (왜?)
네 세트, 다섯 세트째 접어들자 뇌가 이마를 뚫고 나올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호흡이 꼬인 걸까.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번 세트까지만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자, 다짐하며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짰다. 한 달이 넘는 공백을 단번에 메우려 했던 걸까. 플레이트는 쉼없이 늘었고, 무거운 뇌를 짊어진 내 몸은 지지 않으려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50분의 레슨이 끝났다. 프레스와 레그컬 등으로 마무리하라는 오더를 받았지만 나는 굳이 데드리프트를 선택했다. 무게를 별로 들지도 않았는데 엉덩이를 뒤로 빼는 순간 직감했다. 이대로 내려가면 아마 못 올라올거야. 시야가 조금 흐려졌고,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잠깐 쉬면 낫겠지, 생각하고 주저 앉았지만 그 힘도 고갈됐다. 그리고 비틀비틀, 스트레칭 존으로 가서 그대로 엎어졌다.
참, 볼품 없었다. 이 정도로 약한가? 오기를 부리긴 했지만 결국 '수고하셨습니다' 인사까지 잘 해냈는데 결국 이런 꼴을 보이다니.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하지만 그 상한 자존심을 인식하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관심은 자존심의 영역에서 생존의 영역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됐다. 이렇게 의식을 잃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두려웠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왜, 이기려했던 걸까.
한 시간 정도. 춥고 차가운 스트레칭 존의 한기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강함은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 욕심대로 채웠던 중량은 결국 나를 찬 바닥에 내팽겨치고서야 비워졌다. 운동에서도, 삶에서도, 도를 넘은 독기는 이렇듯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사람 안 변한다고, 한편으론 이 독기에 부합하는 체력을 갖춰야겠다 생각도 했다.
겨우 돌아온 정신을 부여잡고 운동화를 다시 신었다. 두통은 가시지 않았고, 뇌세포가 조금 죽었겠지, 생각하다보니 속상했다. 나는 내일 더 멍청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집에 가서 탄수화물 보충해야겠다, 이번 주 운동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또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도 묵직하게 올라앉았다. 이건 예상치 못하게 죽어버린 뇌세포의 망령이 남긴 유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신발장에 운동화를 던져 놓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음의 운동은 기싸움이나 증명 대신, 그저 정직한 호흡을 내뱉는 순간들이 되기를. 비록 내일의 내가 다시 중량 앞에서 오기를 부릴지라도, 오늘의 서늘함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