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소모되는 것을 목격하다

운동은 수행일까, 놀이일까

by 박보라

나는 교육서비스업 종사자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상대한다. 친구도 되어야 하고, 선생도 되어야 하고, 멘토도 되어야 하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역할의 가면을 바꿔 써야 하는 내가, 오롯이 나라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사실 운동하는 딱 그 시간뿐이다.


운동은 내게 그런 의미다. 혼자서 조용히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 불안한 삶과 복잡한 관계를 떨치고 사회생활의 잔여물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는 수련이랄까, 명상이랄까. 고작 헬스장 다니는 것에 무슨 의미 부여를 그렇게 하냐, 누군가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내게는 그렇다.


운동을 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을 꽤 알게 됐다. 헬스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지인들, 진심 어린 눈빛의 운동 선생님들. 무거운 일상에서 다들 랙에 기대어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군대에 가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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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고, 소중히 여기더라도 그걸 다루는 방법은 다양할 수도 있단 사실이 속상하게 다가온 때도 있었다. 내 인생은 운동에 기대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데, 그 운동이란게 유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볼 때. 누구보다 운동에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이의 운동이 아슬아슬하고 자극적인 놀이로 소비되는 것을 보았을 땐 속이 조금 쓰렸다. 알고리즘은 왜 하필 그런 영상을 내게 배달했던 걸까.


헤르만 헤세가 그랬던가. 너무 인생에 진지한 사람은, 현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라고. 난 헤세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 말엔 즉시 반발했다. 현재가 너무 소중하면,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년 뒤, 한 달 뒤에 내가 살아있단 보장이 없다. 그러니 마주하는 한 시간, 한 시간 밀도를 채워서 진정성있고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을지도 모르는 내 미래보다 현재가 소중하니까, 진지함이 곧 살아있음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그 덜 진지한 유희의 영상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았나 보다. 요즘은 옳고 그름을 가르면 촌스러운 사람이 된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로 쿨하게 넘기는 것이 미덕인 세상. 나 역시 직업인이나 사회인으로서는 넓은 포용력을 연기하지만 개인으로 돌아온 순간까지, 이해해야 할까.


비난할 자격도, 미워할 자격도 없지만 '이게 인생에서 중요하고 진지하다며!'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나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같은 곳에서 운동으로 연결되었지만, 무게는 서로 다르게 가늠하고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에겐 놀이, 누군가에겐 겨우 잡은 동앗줄.


물론 그 유희가 그 전부는 아니겠지. 때때로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기 위해, 혹은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해 가면을 쓰곤 하니까. 어쩌면 그 자극적인 행위 뒤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또 다른 무게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쨌든 보여지는 것은 가볍게 휘발되지만, 몸으로 쌓아 올린 시간은 다시 그 무게감을 드러낼 테다. 그러니 씁쓸함은 거두어 보기로 결정했다. 바람이 지나고 나면, 결국엔 다시 묵묵히 자신의 중량을 감당하던 그 단단한 본모습을 다시 드러낼 거라고, 믿고 싶다. 어쨌든 운동을 오래 한 사람들은 몸으로 절제를 배운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결국, 진지한 마음으로, 다시 벤치 앞에 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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